보험료 절감에 혈안…사고 터지자 책임회피 ‘급급’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사고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사고 이후 한국타이어 측은 기업휴지손해담보(BI) 등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재산종합보험(PKG) 계약을 중개한 보험중개사에 책임을 묻겠단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작 한국타이어는 수년간 안전점검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예고된 ‘인재’의 책임을 애꿎은 곳으로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타이어 21만개 소실, 재산피해 7000억원
지난 12일 오후 10시 9분경 대전 제3일반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대전소방본부는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인근 충북과 충남, 세종은 물론, 전북과 울산, 중앙119구조본부의 지원까지 받았으나 여러 악조건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784명의 소방인력과 158대의 차량, 9대의 헬기가 투입된 현장의 불은 15일 오전 8시, 발생 58시간 만에야 겨우 잡혔다. 이 사고로 제2공장과 제3물류창고, 타이어 21만개(추정치)가 소실됐다. 재산 피해액은 7000억원대 수준으로 예상된다.
논란① 일부보험
1.7조 재산보험 가입했지만 보상한도는 3000억
불이 난 대전공장은 1조7031억원 규모(보험가액)의 PKG에 가입돼 있었다. 40%의 지분을 가진 KB손해보험이 간사를 맡고,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DB손해보험이 각각 20%를 인수했다.
그런데 보험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한도는 3000억원으로 설정됐다. 대전공장 전체 가액 대비 약 17.6%에 불과한 일부보험이다. 공장이 전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극히 낮은 비중이다.
그런데 3000억원마저 다 보상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PKG 기본약관에서 통용되는 비례보상조항(Average Clause) 때문이다. 일반적인 PKG 증권은 전체 가액의 80% 미만으로 가입한 계약에 대해선 발생한 손해액을 비례보상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사전에 약정된 별도 조항이 없었다면, 1조7031억원의 가액을 가진 대전공장 또한 3000억원 한도의 보험에 가입했기에 비율에 따라 실제 손해액의 17.6% 정도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추정손해액 7000억원으로 계산하면 약 1232억원 정도의 보상금이 예상된다.
논란② BI 부재
‘기업휴지 담보’, 왜 가입 안했나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선 이번 사고로 약 1조1677억3942만원의 생산 중단이 발생했다. 최근 매출액(7조1411억3682만원)의 16.4%에 달하는 규모다. 제2공장이 전소돼 향후 생산 재개 예정일 또한 미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를 보장받을 길은 없다. BI에 가입하지 않아서다. BI에 가입했다면 사업체를 정상적으로 가동했을 때 올릴 수 있는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에 의한 침수로 가동을 멈춘 포스코,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가 중단된 카카오 역시 이 BI에 가입하지 않아 큰 피해를 떠안은 경우다. 앞선 사례에도 불구하고 한국타이어는 BI에 가입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부담을 지게 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최근 PKG 계약을 중개한 브로커사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③ 화재 원인
수년간 안전점검 지적사항 개선 안 해…안전불감증 논란
그런데 애초에 불이 난 건 한국타이어가 안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타이어는 수년간 안전점검에서 지적받은 위험요소들을 전혀 개선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법정 특수건물로 분류된다. 특수건물은 연 1회 화재보험협회로부터 안전점검을 받는다.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의무 사항으로 건물 내 화기와 위험물, 가스, 시설물, 안전관리 체계를 비롯해 각종 소방시설 및 연소확대방지, 피난시설 등의 적정성을 확인한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4월 21일 안전점검을 받았다. 여기에서 총 44건의 불량사항이 발견됐다. 최초 화재가 발생한 가류공정에서도 8건의 지적이 나왔다.
화재보험협회는 가류공정에 대해 ▲밀폐형 조명기구 교체 ▲오일 유출방지턱 설치 ▲충전기용 전선 회로 분리 ▲분진 축적 방지를 위한 공조설비 보완 ▲피트 내 누적 오일 제거 ▲철골 기둥 내화처리 ▲스프링클러설비 송수구 개선 ▲스프링클러 헤드 수손 피해 방지를 권고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지적사항들이 지난 2020년과 2021년 점검에서도 똑같이 나왔었다는 점이다. 법정 점검을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고 개선조치 권고까지 내려졌음에도 한국타이어는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철골 기둥 내화처리 미이행은 이번 사고에서 피해를 키운 직접 원인으로 작용했다. 화재보험협회는 해당 권고의 이유로 가류공정 지붕 상부에 설치된 농축축열촉매연소설비(CRCO)의 하중으로 인해 화재 시 붕괴가 우려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는 3년 동안 이를 개선하지 않았다. 실제로 화재가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붕괴 위험 때문에 내부 진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진화 후에도 제2 공장 서편 일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예정됐던 합동 현장감식까지 차질을 빚었다.
이와 함께 화재보험협회의 특수건물 안전점검 외 한국타이어가 연 2회 수행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작동기능기능점검, 종합정밀점검)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자체점검에서 총 240건의 불량사항을 발견하고, 이를 모두 개선했다고 관할 대전대덕소방서에 보고했다. 그러나 화재보험협회 점검 결과, 최소 3년 이상 화재 수신기 고장이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스스로 문제없다고 보고해온 자체점검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정우택 국회 부의장은 “수년 동안 경고된 위험을 완전히 무시해온 행태로 8만㎡에 달하는 공장과 타이어 완제품 21만개가 전소된 건 물론 인근 주민과 교통에도 큰 피해를 안겼다”며 “이같은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안전에 등한시한 부분이 있다면 철저한 조사를 거쳐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보험 정상화 계기로
한국타이어의 화재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대전공장에서는 지난 2006년 2월, 2014년 9월에도 불이 났었다. 2002년 3월과 2010년 4월에 불이 났던 금산공장 사례까지 포함하면 21세기 들어서만 무려 다섯 번의 화재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타이어는 법정 안전점검에서 적발된 문제점들을 방치했다. 또 1조7031억원 가액의 공장 건물을 PKG에 가입하면서 보상한도는 3000억원으로 설정하고 BI조차 제외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커지자 이제는 책임을 전가할 곳을 찾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일반보험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규모와 영향력이 큰 기업들은 자신의 재산뿐만 아니라 사고 시 사회적 파장도 고려해야 하며, 보험업계 역시 무분별한 가격 경쟁보다 확실한 리스크 보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화재 당시에는 일대 유독가스 확산과 교통 체증, 불안감 조성 등의 직간접 피해가 발생했고 완제품 타이어가 대거 소실되면서 차량 생산에도 차질이 생기는 등 2차 피해도 이어졌다”며 “이제 기업들은 보험에 가입할 때 자사의 피해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까지 진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