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이상한 환경책임보험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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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이상한 환경책임보험정책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4.08.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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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금액 먼저 높인 뒤 뒤늦게 배상책임한도 검토
요율 인상요인 명확한데 보험료 인상 가능성 일축
자기부담금 상향 불가피…반대 급부 보장 공백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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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환경책임보험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보험의 보장범위 확대 방안이 의문을 자아낸다. 일반적으로 법정 배상책임한도가 정해진 뒤 보험으로 보장할 영역을 설정하는 것과 달리, 보장한도를 먼저 높이고 배상책임한도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환경부는 지난 7월 1일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기엔 환경책임보험의 보장범위와 보장금액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환경책임보험 가입이 가능한 대상에 유해화학물질 운반차량을 포함하고, 보장금액은 나군 150억원(기존 100억원, 소기업은 80억원→100억원), 다군 75억원(기존 50억원, 소기업은 30억원→50억원)으로 상향한다는 게 골자다. 가장 규모가 큰 가군은 현행 300억원을 유지한다.

한 달 가량이 지난 7월 30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나라장터를 통해 ‘환경책임보험 배상책임한도 및 체계개편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취급물질이 많아 대규모 피해 발생이 가능한 환경오염사고의 특성상 배상책임한도가 낮으면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게 추진 배경이다. 이에 따라 배상책임한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목적이다.

배상책임한도와 보장금액의 차이는 명확하다. 배상책임한도는 말 그대로 법적인 책임의 범주다. 시설 규모에 따라 분류된 가‧나‧다군의 배상책임한도는 각각 2000억원과 1000억원, 500억원으로 규정돼 있다.

반면 보장금액은 의무로 가입해야 하는 기준이자 환경책임보험의 보장한도다. 현행 가군은 300억원, 나군은 100억원(소기업 80억원), 다군은 50억원(소기업 30억원)이다. 의무로 규정된 보장금액을 초과하는 위험을 보장받으려는 경우엔 배상책임한도까지의 임의보험 가입도 가능하다.

보장금액 상향 계획은 올해 다군 소기업으로 보장금액 30억원의 환경책임보험에 가입한 곳에서 발생한 사고 피해액이 100억원에 육박한 사례가 나오면서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임의보험으로 추가 가입이 가능함에도, 일부 사례로 의무가입 기준을 상향할 근거가 되느냐는 이유다.

환경책임보험의 손해율이 증명하듯, 오히려 대부분 사고에선 보장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피해액이 발생했다. 0.1%로 설정된 자기부담금보다 작아 아예 보험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기도 했다. 또 해당 사례를 근거로 한다면, 75억원으로 상향되는 보장금액도 피해액에 미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보장금액을 올린 뒤 배상책임한도 조정을 검토하는 것에도 비판적인 시각이 나온다. 의무보험이 커버할 범위를 먼저 설정하고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위험을 분석, 조정한다는 게 일반적인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는 거다.

환경부는 또 보장금액 상향에도 보험료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요율은 그간의 사고건수와 보험금 지급액 등을 고려해 이해관계자들의 협의를 거쳐 결정된다는 이유다. 즉 현재의 안정적인 손해율을 근거로, 보험료 인상 없이 보장금액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환경부 스스로도 강조한 환경책임보험의 특수성을 간과한 판단이란 지적이다. 환경책임보험은 점진적 피해까지 보장하며, 일반적인 배상책임보험과 달리 배상청구 기준 증권을 사용한다. 현재까지의 사고 빈도나 손해율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한편 일각에선 보장금액 상향이 되레 보장 사각지대를 양산할 가능성에 관한 우려도 나온다. 최대 보상한도의 0.1%로 정해진 자기부담금을 높여, 피해액이 적은 다수의 사고에서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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