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근 2~3년간 해상보험 전반에 걸친 시장상황의 연성화(Soft Market) 및 자동차 운반선 ‘Freemantle Highway호’에 발생한 화재사고로 대표되는 대형사고의 빈번한 발생,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발생손해액 등 클레임 코스트(Claims Costs)의 증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사슬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의 변화는 해상보험 언더라이팅에 있어 보유수지의 악화라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제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다. 본고(本稿)에서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 해상보험시장의 지속가능한 보험영업 이익의 성장을 위해 고려해볼만한 개념의 도입을 검토하고자 한다.
2. 해상위험관리의 개념
해상 관련 사업에서 리스크는 선원들의 과실로 인한 해상사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기업경영에서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측(不測)의 상황이나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변수 등이 나타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리스크는 육상 및 해상에 공히 존재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육상에서의 리스크는 다분히 인적요소가 크게 작용하는데 비해, 해상 리스크는 일부 사람이 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해상리스크에 대처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해상사고는 관련 보험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육상 리스크의 경우 관리대상 밖으로 취급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향이었으나 최근에는 리스크 요인을 사전에 찾아내어 이를 선행적으로 통제하여 리스크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는 사전적 관리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다.
실제 운송을 위탁하는 화주를 포함한 육상조직에 잠재하고 있는 리스크는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뿐만 아니라 피해 규모에 따라 관계된 기업(화주, 운송인, 보험자 등)의 존립마저 뒤흔들 수 있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해상 관련 기업이 초점을 두어야 할 리스크관리의 기본방향은 육상·해상 전 과정에서 잠재하는 인적요소의 관리이며 사후 관리보다는 사전적 예방관리라고 생각된다.
해상분야에서 리스크가 현실화되어가는 과정, 즉 손해의 발생과정을 살펴보면 위태(危殆, Hazard) → 사고(事故, peril) → 손해(損害, Loss)의 순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갑판 상에 흘러내린 기름이나 End-on 또는 Nearly end-on 상태의 두 선박은 위태상황을 조성하고 있으며 하역인부가 기름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선박이 충돌하는 사고를 거쳐 부상이나 선체손상 또는 오염이 라는 손해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손해의 발생시점’을 기준으로 볼 경우 위태와 사고는 사전적 개념(Pre-Loss)에, 손해는 사후적 개념(Post- Loss)에 해당하며 리스크관리는 주로 사전적 개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해상보험 실무적 관점에서 마린 리스크 엔지니어링(Marine Risk Engineering)은 이러한 위태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보험자의 선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피보험자 입장에서는 해상보험 자체가 위험관리의 기술적 처리 중 하나이긴 하지만, 보험자 입장에서의 위험관리 기능은 아래와 같은 현실적인 이익요소가 된다.
• 손해율의 개선 등을 통한 전반적인 영업이익 극대화
• 위험노출도 분석을 통한 적절한 보험상품, 보험가입방안, 담보범위 제시
• 가격 및 서비스품질 경쟁력 확보
아래의 문언은 싱가폴에 소재한 한 해상보험자가 Project Cargo(건설공사 프로젝트에 조달되는 화물의 적하보험) 위험관리방안 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서 발췌한 것이다. 해상위험관리의 개념과 보험자 측면에서의 장점을 간단하고도 극명히 보여주고 있어 여기서 소개한다.
“Transportation technology is changing, and managing those risks requires the kind of specialized knowledge and experience our Marine Risk Engineers have”.
(운송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며 해당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당사의 해상위험엔지니어가 보유하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즉, 해상위험관리 전문인력의 보유는 단순히 사고예방의 차원에만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 견지에서도 그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할 것이다.
3. 해상위험관리의 절차
(Project Cargo에서의 실무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한국 해상적하보험시장에서 보험자 자체적인 위험 관리방안이 실행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나, 앞서 언급한 Project Cargo의 영역에서는 통상적으로 보험자의 자체적인 위험관리가 수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선적화물 자체가 대형 플랜트, 발전소 등에 조달된다.
• 장기간에 걸쳐 고가의 정밀한 대형화물이 조달된다.
• 물류의 흐름과 그 기획이 복잡하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 전체 화물의 전반적인 조달에 특수한 처리, 복합적인 운송기법이 요구된다.
Project Cargo의 특성상 비표준 컨테이너화물(Open top, Flat rack를 포함한 Breakbulk의 형태)이면서 수백톤 이상의 중량화물(Heavy Lifts)의 운송이 이러한 Project 물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화물들은 운송기술적인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갑판적재되거나 부선을 이용하여 운송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대규모의 건설공사(Construction Project)에서는 프로젝트금융(Project Financing) 기법을 이용한 자금조달이 이루어지는 경우 화물의 물적손해담보에 추가하여 발주처 및 금융기관의 피보험이익을 위한 예정이익상실 담보(Delay in Start-Up 또는 Advanced Loss of Profit)에 가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Project Cargo 영역에서는 중량화물의 복잡하고 특수한 운송기법과 그 실행이 주된 위험노출도(Exposure to Risks)를 이루게 된다. 또한 결과손해를 담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금융과 회계에 관한 고도의 이해가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만일 Gas Turbine을 운송하는 화물선이 항해도중에 풍랑을 만나 물적손해가 발생하고 공동해손을 구성하는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 화물의 자체에 발생한 단독해손 및 공동해손 희생손해 또는 비용손해에 덧붙여 화물의 인도지연으로 인하여 프로젝트의 상업운전개시가 지연되는 결과로써 발생하는 재정적 손해까지도 보험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당한 위험노출도를 감안하여 보험자의 Marine Risk Engineers는 아래의 단계적인 절차를 통하여 선제적으로 위태와 사고를 예방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하여 하역과정에서의 화물의 추락방지를 위한 기술적 권고, 화물의 적부를 확인하여 선박의 복원성 등 감항능력에 미치는 영향분석을 통한 권고, 내륙운송과정에서 트레일러 등 운송수단의 전복 등을 방지할 수 있는 예방대책의 권고 등이 이루어진다. 해상 및 육상운송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권고 및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통하여 사전적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는 것이다.
• 운송 및 적부계획의 검토
• 공급업자의 구내에서 내륙운송수단에의 선적과정 검사
• 예인선 및 부선에서의 환적과 선적과정 검사
• 내륙운송수단 및 부선에서의 환적과 양하과정 검사
• 외항화물선에서의 선적과 적부에 관한 검사
• 양하항에서 외항화물선에서의 양하과정 검사
• 건설현장까지의 인도를 위한 최종 운송수단에의 선적과정 검사
• 건설현장에서의 하역과정 검사
• 항해구간의 기상예보의 준수 등 항해과정 중 안전운 송을 위한 항해기술적 권고
우리나라 해상적하보험시장에서는 전세계 적하보험시장과 마찬가지로 Project Cargo 영역에서만큼은 사전적 위험관리를 통한 선제적 예방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즉, 위에서 언급한 사전적 리스크관리 개념이 충실히 이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현상검사 등 물리적 수단을 통해서도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지만, 화물의 적부도(Stowage Plan) 및 운송/하역계획서(Method Statement)의 사전검토 후 현상검사의 실시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이러한 서류적 검토를 통하여 기술적 권고사항을 제시하고 이에 상응하는 예방조치가 실행됨으로써 위험노출도가 제어되는 경우도 있고, 비용관리 및 절감의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아쉬운 점은 국내의 해상보험자 자체적인 위험관리조직을 갖추지 못하여 해외에 소재한 보험자에게 전적으로 의뢰하여 이러한 예방적 실행을 하여 온 점이다.
4. 제언
앞서 설명했듯 최근 우리나라의 해상보험시장은 적지 않은 도전과제와 만나고 있다. 특히 경쟁구도의 심화 등으로 인해 계속되는 요율인하 압박 요소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국내의 해상보험시장에서 발생했던 대형사고 중에서 특히 2010년도에 발생한 전자제품화물의 부적절한 포장으로 인한 약 US$ 3000만불의 사고 및 2011년도에 발생한 철광석의 선적도중 선체가 파열된 사고(약 US$ 2800만불의 발생손해액), 그 이후에도 발생한 조선소 내 건조 중인 선박에 발생한 화재사고 등은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유형의 사고였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선박의 대형화 추세는 ‘컨테이너화물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라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Nickel Ore 등 대량 벌크화물의 액상화로 인하여 운송 중인 선박의 전복 및 침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Project Cargo의 영역은 보험조건상 Survey Warranty에 따라 사전적인 위험관리방안이 수립되어 실행되고 있지만, 일반적하보험에서 소수의 품목 및 손해유형에 따라서 설정된 경우 이외에는 공제금액(Deductible)이 설정되지 않는 우리나라 적하보험실무를 고려했을 때, 해상위험관리부문은 앞으로 간과할 수 없는 필수적이고 중대한 기능을 맡게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외에도 통상의 운송과정 이외의 보관위험(Storage Risk)의 요구증대, 2000년대 초 이후 항만터미널 등 Maritime Liability 보험상품의 수요증대 등을 감안하였을 때 해상위험관리개념의 도입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업계 전체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해상보험자들도 해상위험관리조직을 갖추고 예상가능한 사고유형 시나리오에 따른 사전적 위험관리지침의 시행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보험종목에서와는 다르게 해상위험관리 담당직원은 일정 수준의 해기 경험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최소 수 년간의 1등항해사 이상의 승선경험이 있는 해기사 중에서 선발하여 일정기간 동안 해상보험의 이론 및 실무교육을 거친 후 현업에서 실제 검사의 수행 등의 업무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견줄만한 고급의 해사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고, 또한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해사검정 업계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업계가 유능한 인력 풀(Pool)을 보유하고자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결국 국내 해상보험업계 전체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경험의 부족으로 선박보험 및 P&I와 관련한 내용은 언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위에 언급한 해상적하위험관리의 개념은(특히 Project Cargo의 영역에서 언급한) 선박과 P&I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선박의 감항능력과 화물운송의 안전성 확보라는 전제를 위하여 기술적으로 선제적인 실행방안의 수립과 실행이기 때문이다. [한국공제보험신문=황순영 버클리인슈런스아시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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