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談]은 보험업계의 숨은 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보험상품 개발 비하인드부터 각종 카더라 통신까지 보험업계 여러 담론(談論)과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 때로는 보험사들이 민감한 험담(險談)까지도 가감없이 전달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통상 보험에 가입할 때는 심사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해당 보험상품이 보장하는 병력이 있었는지, 직업이나 이륜차 운전 여부 등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을 키울 요소가 있는지 같은 걸 확인하는 거죠. 이때 위험이 현저히 크다면 보장, 보험료가 조정되거나 심한 경우 보험 가입이 거절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흔히 무심사플랜이라고 불리는 건데요. 말 그대로 소비자가 어떤 조건이든 심사 없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보험사 입장에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좀 더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심사플랜이 무고지는 아니라는 논리에서 비롯된 분쟁입니다. 그러니까 심사는 하지 않지만, 심사에 필요한 사전 정보는 알려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소비자가 보험 계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알리지 않았다면 향후 보상이나 계약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소비자의 알릴 의무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의아한 건 이를 무심사플랜에도 적용할 수 있냐는 거죠. 병력이 있거나 위험한 직업을 가졌어도 가입할 수 있으니까요. 심사 대신 자동승인으로 넘어가니 특정 요인에 따라 보장을 줄이거나 인수를 거절할 일도 없고요. 더구나 이미 그런 특성 때문에 보험료도 같은 보장의 일반상품보다 높게 책정돼 있습니다.
보험사들의 입장입니다.
“인수 관점에선 고지 여부와 관계없이 전건 승인되는 게 맞다. 하지만 보상 관점에서는 인수 때 ‘무심사’ 조건이지 ‘무고지’ 조건으로 판매된 상품은 아니다. 그래서 알릴 의무사항을 입력하게 돼 있고, 고지가 없으면 알릴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다.”
보험설계사들은 말합니다.
“무심사플랜은 청약 당시 입원 중이라도 자동승인된다. 즉 병력 등 위험요소와 무관한 것으로, 보험료도 그런 리스크에 맞춰 높게 산정돼 있다. 주로 알릴 의무를 고지했다가 가입이 거절된 이들이 찾는 상품인데 심사도 않을 사항을 일일이 입력하라는 건 너무 소모적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입니다.
“차라리 고지항목이 명확해 질문에만 답하는 형태라면 편하겠지만 일반인들은 몇 년 전에 어떤 이유로 병원에 갔었는지, 정확한 소견이 어땠는지도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가입 당시엔 묻지도 않았던 부분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당할까 걱정된다.”
여기 은행이 고정금리형 무심사 대출상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런데 고객이 갱신하려고 하니 연체 이력이나 무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연장 거부, 혹은 인상 금리를 적용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조건은 무심사였지 무고지가 아니었다면서요.
보험에는 지켜야 할 규정이 참 많습니다. 주요사항을 알려야 하는 게 소비자의 당연한 의무라지만, 소비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한 프로세스와 상세한 설명을 제공해야 하는 것도 보험사의 마땅한 책무죠.
소비자의 알릴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다면, 보험사도 처음부터 계약을 인수하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지금의 무심사플랜 형태는 보험사고가 없으면 계약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보험금 청구가 이뤄졌을 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란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려워 보입니다. #보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