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 자연재해, 코로나19, 사이버위험 ‘4중고’
위험노출도 심화, 손해율 급증…포트폴리오 조정 필요
[한국공제보험신문=박형재 기자] 내년도 재보험료가 대폭 인상될 전망이다. 최근 세계적인 지정학적 긴장, 높은 물가상승률,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보험료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지난 9월 10일~14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9월 재보험자 회의’에서 언급됐다.
이번 회의는 뮌헨리, 스위스리, 하노버리 등 전 세계 재보험자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재보험업계 동향 및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2023년 1월 1일 재보험 갱신 관련 고객사 협의 등을 갖는 자리로 마련됐다.
코로나19 여파로 행사가 2년 만에 개최된데다 고물가, 고금리 등 경제 이슈와 러시아전쟁 등 지정학적 이슈,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증가 등 재보험업계 이슈도 많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에서는 코리안리, 삼성화재, 서울보증, SGIS(사이먼글로벌보험중개) 등이 참석했고, 일본에서는 아이오이닛세이, 미쓰이스미토모, 손보재팬, 동경해상, 일본 재공제 생활협동조합연합회 등 다양한 기업이 참석했다.
물가상승 심각, 재보험료 인상 불가피
이번 회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는 물가 상승, 대형 자연재해 발생 및 재보험 인수 역량, 코로나19 감염증 여파였다.
우선 심각한 물가 상승으로 인해 대부분의 재보험 출재사는 현상 유지를 위해 최소 10% 이상의 한도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2022년 1월 1일 갱신에는 아직 물가 상승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2023년 보험료 책정에는 그동안 반영되지 않은 추가 물가 상승률과 2023년 예측을 반영해 재보험료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이에 따른 보험 및 재보험 인수 역량이 중요해지는 현상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회의에 참석한 재보험사 관계자 의견을 종합하면, 지난 5년간 재보험업계가 지불한 평균 거대 재해 손실이 연평균 약 500억 달러였으나, 최근에는 연간 약 1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위험 모델링 회사 Verisk(전 AIR)는 연간 평균 손실 수치를 1230억 달러로 높이고 보험료 책정 모델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특히 거대 자연재해의 손실은 2022년에 누적됐다. 상반기에 확정된 재보험업계 손실만 총 390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호주 홍수(추정손실액 63억 호주달러), 프랑스 폭풍(40억 달러) 등이 올해 발생한 주목할만한 자연재해로 손꼽혔다. 강력한 태풍, 토네이도도 올 하반기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자연재해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보험사의 인수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뮌헨리, 스위스리 같은 거대 유럽 재보험사들은 더 많은 위험 보유 여력이 있으나, 가격과 조건을 꼼꼼히 따질 것으로 보인다.
SCOR, TRANSRE, AXA XL과 같은 재보험사의 경우 거대 재해보험의 보유 한도를 지금보다 낮출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변화에 따라 갈수록 빈도수가 늘어나는 자연재해에 대해 적극적인 인수 전략을 펼칠지, 아니면 손해율 관리가 어려운 만큼 재보험 보유를 줄일지 여부를 두고 재보험사들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예상된다.
코로나 보험손실 500억 달러, 역대 3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 팬데믹 관련 이슈도 이번 회의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재보험업계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보험 손실은 2021년 말까지 435억 달러였으며 현재는 5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역대 자연‧인공재해로 인한 보험 손실 중 세 번째로 큰 금액이다. (1, 2위는 카트리나 허리케인과 9/11테러)
코로나 보험금 청구의 대부분은 생명‧건강보험 청구와 행사 취소‧사업 중단 보험 청구가 차지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업중단 보험 손실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일부에서는 보험증권 해석을 놓고 이견이 발생해 보험금 지급 분쟁을 겪고 있다.
런던 로이즈는 코로나에 영향을 받은 고객에게 290억 파운드를 2021년 지급했다. 2020년 스위스리의 코로나 관련 보험금과 준비금은 약 40억 달러에 달했고, 뮌헨리는 2020년 코로나 관련 보험금으로 34억 유로를 지급했다. (대부분 행사 취소와 사업 중단 보험)
태국 보험시장은 손해율 관리 실패로 30억 달러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게다가 태국 보험사의 순보유 손실액 증가로 인한 지급준비금의 부족분이 원인이 되어 더 많은 추가 자본투입이 필요하게 됐다. 특히 2개 회사는 규정 준수에 실패해 보험 라이선스를 박탈당했고, 3개 회사는 현재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대만 보험사는 1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사이버위험도 재보험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다. 가이 카펜터는 2025년까지 사이버 보험료가 10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보험사‧재보험사의 글로벌 사이버 재해 대비 여부이다. 지정학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사이버 범죄의 급격한 증가는 여전히 도전 과제이다.
정부와 기업 등 중요 인프라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2013년 10건 미만에서 2020년 400여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랜섬웨어 사고의 증가는 더 이상 사이버 공격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런던 로이즈는 사이버 위험을 주요 시장의 하나로 규정하고, 관련 회사(TRIUM Cyber Syndicate 1322)의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내년 재보험료 증가 ‘한목소리’
주요 재보험사 수장들은 내년도 재보험료 증가는 불가피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스위스리 재보험부문 CEO 모제스 오제이세코바는 12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재보험 업계는 현재 코로나19의 영향과 자연 재해로 인한 손실 증가 외에도 물가상승, 경기 침체 위험, 지정학적 긴장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비용과 원가의 인상이 가속화하는 것을 고려하면 보험료를 신중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COR CEO 로랑 루쏘(Laurent Rousseau)는 “현재 재보험 시장이 5년전 원수보험 시장과 유사하게 다년간 상당한 보험료율을 인상시키려는 변곡점의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하노버리 CEO 장 자크 헨초즈(Jean-Jacques Henchoz)는 “높아진 물가상승률과 위험 노출도를 반영하기 위해선 미국 재물 자연재해위험에 따른 보험료 인상이 연말에 매우 중요 할 것”이라며 “손실 증가를 고려해 전 세계적인 보험료율 상승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뮌헨리 재보험위원장 토르스텐 주렉(Torsten Jeworek)은 “다음 갱신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던 작년 갱신에 비해 훨씬 더 도전적”이라며 “전 세계 순수 재보험 자본이 2021년 4750억 달러에서 2022년 약 4350억 달러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오세문 SGIS 회장은 “세계적인 재보험사들은 내년도 상당한 보험요율 인상을 추진할 것이다. 위험 노출도의 심화와 주요 시장의 물가 상승으로 인해 지속적인 배상청구 건수의 증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에서는 이런 변화에 맞춰 재보험 포트폴리오 및 계약조건을 조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9월 몬테카를로 재보험자 회의에 이어 재보험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행사가 또 한번 개최된다. 오는 10월 31일~11월 3일까지 싱가포르에서 SIRC가 열리는 것. 이번 행사에는 다수의 재보험사가 참석해 업무 협의 및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예정이다.
SGIS에서도 별도 부스를 마련하고 10여명이 참석할 계획이다. 한국공제보험신문도 행사에 참석해 재보험업계 최신 동향과 이슈를 생중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