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되면 보증시장 개방, 손보사 사업진출 예상
건설‧전문건설 등 공제조합에 악재, 출혈경쟁 우려
분양보증‧인프라보증 등 공제조합 제약 풀어줘야
[한국공제보험신문=박형재 기자] 정부가 서울보증보험 민영화 작업에 착수하면서 공제업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영화 과정에서 그간 독과점 상태로 있던 보증보험 시장이 민간 보험사에 개방될 경우, 보증상품 취급 공제기관과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보증이 내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시작으로 지분을 매각하고, 실제 경영권 매각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민영화 = 보증시장 개방’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분위기다. 서울보증 민영화에서 주목할만한 내용을 살펴봤다.
‘50%+1주’ 매각, 공적자금 6조원 회수
정부가 서울보증보험(SGI서울보증)의 지분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1일 회의에서 ‘서울보증보험 지분매각 추진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보유한 서울보증보험 지분 93.85%를 단계적으로 매각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내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분 10%를 상장, 매각할 계획이다. 이후 2~3년간 예보 지분을 입찰 또는 블록세일로 매각한다. 4~5년 뒤엔 경영권(50%+1주)까지 민간에 넘기는 완전 민영화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보증보험은 1998년 외환위기로 파산 위기에 몰린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합병해 출범한 회사다. 예보 등으로부터 10조2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정부는 지난 20년간 우선주 상환, 배당금 수령 등으로 4조3483억원을 회수했으나 아직 5조9017억원이 미회수된 상태다.
문제는 공적자금 회수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증보험시장의 공공성 등을 이유로 서울보증의 민영화를 늦춰왔지만,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 청산 시한’이 2027년 말로 다가오자 ‘매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보증잔액 357조원, 시장점유율 26%
서울보증은 자산 9조9507억원, 자본 5조1642억원, 직원수 1500명 규모의 건실한 기업이다. 매년 4000억원대 순이익을 내고 있어 매력적인 매물로 평가된다. 특히 유일한 전업 보증보험사로 전세대출보증보험 등 보증보험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강성호 금융위원회 서기관이 한국금융학회에 투고한 ‘보증보험시장 경쟁현황 및 개편방안’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국내 보증시장의 보증잔액은 1384조원이며, 매년 7.2%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현재 보증시장에는 70여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보증잔액 기준 톱3는 주택도시보증공사(426조원), 서울보증보험(357조원), 주택금융공사(103조원)로 나타났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주택금융공사의 경우 보증범위가 건설업, 주택금융으로 제한되어 있고, 정책보증기관임을 감안하면 서울보증이 보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실상 가장 크다. 서울보증의 보증잔액은 357조원으로 전체 보증시장의 25.83%를 차지한다.
특히 서울보증보험이 공급하는 83개 보증보험 상품 중 경쟁사가 없는 비경쟁상품은 14개종이며 전체 매출액의 19%에 달한다.
이에 비해 보증상품을 취급하는 공제기관의 보증시장 점유율은 13.66%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건설공제조합 103조8755억원(7.51%) △전문건설공제조합 28조9555억원(2.09%) △엔지니어링공제조합 23조136억원(1.66%) △자본재공제조합 10조6500억원(0.77%) △전기공사공제조합 8조7242억원(0.63%)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5조2523억원(0.38%) △소프트웨어공제조합 5조1801억원(0.37%) △정보통신공제조합 2조3597억원(0.17%) △소방산업공제조합 1조1216억원(0.08%) 순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IPO와 지분 매각을 통해 미회수된 공적자금 5조9017억원을 회수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독과점 풀리면 가치 하락, ‘매각의 딜레마’
다만, 매각 과정에서 몇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정부 입장에선 IPO를 결심한 만큼 서울보증의 가치를 최대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민영화가 진행돼 공기업 타이틀을 떼어내면 ‘보증보험 시장 개방’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는 기업 벨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보험업계는 정부가 서울보증 경영권을 민간에 매각하면 보증보험시장이 민간 보험사에게 개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공기업으로 운영된 만큼 독점적 지위를 인정해왔지만 민영화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실제로 보증보험업에 관심을 갖는 손보사들이 많다. 업황 부진으로 새 먹거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행보증보험, 신원보증보험 등을 판매할 기회가 생긴다면 보험사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부 입장에선 민영화로 인해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면, 벨류가 하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또한 서울보증 매각 과정에서 공공성 훼손 우려도 존재한다. 서울보증이 특정 재벌이나 외국계 자본,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에 매각될 경우 공공성 대신 이윤추구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21년말 기준 서울보증보험이 개인과 중소기업에 신용을 공급한 건수는 전체 건수의 97.6%에 달했다. 개인·중소기업 신용공급 금액 기준으로는 92.3%를 기록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보증시장이 경쟁체제로 돌입하면 그 혜택은 신용도가 좋은 대기업에게 가고, 정작 보증이 필요한 저신용자를 위한 혜택은 줄어들어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험사들이 보증업에 진출하면 보증상품 취급 공제기관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 공제업계 관계자는 “민간 손해보험사가 보증시장에 진출할 경우 서울보증과 단일경쟁 구도에서 다수 경쟁구도로 바뀌고, 손보사의 영업력도 만만찮기 때문에 위기감이 크다”고 우려했다.
다만 정부가 서울보증을 매각하기까지 5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에서 공제기관들이 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또한 ‘서울보증 매각=보증시장 개방’은 아니기 때문에 사태 추이를 관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밖에 주식시장 침체로 수개월째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어 있다는 점, 서울보증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싶은 정부 입장에서 ‘보증시장 개방’은 당장 추진 계획이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한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공제조합들은 사태 추이를 모니터링하면서, 정부의 정책 방향 발표나 지분매각 상황 등을 살펴보고 적절히 대응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