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최근 동기들 사이에서 묘한 논쟁이 있었다. 연차촉진제도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한 동기가 연차촉진제도 때문에 연차수당을 못 받는다는 불만을 제기했고, 다른 동기는 그 덕에 눈치 덜 보고 휴가를 쓸 수 있는 거라며 응수한 것이다. 듣고 보니 둘 다 맞는 얘기 같았다.
연차촉진제도는 2003년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회사는 연차유급휴가 소멸 6개월 전 직원들에게 남은 휴가를 사용하도록 서면으로 촉구한다. 촉구할 때 직원이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 일수를 알려주고, 10일 이내에 사용계획을 받는다.
사용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연차휴가 사용이 가능한 마지막 날로부터 2개월 전까지 회사가 직접 연차사용 시기를 정해 통보한다. 만약 지정된 휴가일에 직원이 출근한다면 노무 수령을 거부해야 한다. 이 절차를 마치면 회사는 직원이 사용하지 못한 연차에 대해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직원은 연차촉진을 근거로 못 이긴 척 휴가를 쓸 수 있고, 회사는 예산을 아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취지다. 미사용한 휴가를 금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 “회사가 이렇게 바쁜데 꼭 휴가를 가야 돼? 어차피 돈으로 받잖아”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기 쉽다. 휴가를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선 제도적으로 강제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정말로 휴가를 갈 여력이 안 되는데도 연차촉진제도를 시행하는 경우다. 인력이 부족하거나 사업확장으로 업무량이 과중한 상황에서 휴가를 가기란 쉽지 않다. 회사가 지정한 휴가일에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 회사는 노무 수령을 거부하고 강제로 그 직원을 쉬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인사담당자는 직원이 출근 못 해서 회사에 손해 생기면 니가 책임질 거냐는 상대 부서장의 공격을 받아낼 재간이 없다. 또, PC-OFF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회사라면 실질적으로 직원이 일을 못 하게 막을 방법도 없다.
결국, 직원은 일은 일대로 하면서 휴가는 날리고, 회사는 직원이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을까 전전긍긍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직원도 회사도 불행해지는 것이다. 인사팀 부서장은 회삿돈 잘 아꼈다고 임원에게 칭찬 한마디 정도 들을 순 있겠지만 말이다.
연차촉진제도는 적절한 인력충원과 업무량 조정이 함께 수반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제도다.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없느니만 못하다.
그러니 제도 자체의 효용을 논하기 전에, 우리 회사의 상태를 진단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어떤 방향이 내게 유리한지 판단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