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보험계약은 보험자의 급부의무의 발생·불발생 또는 그 대소가 우연한 사고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사행계약의 특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보험가입자 중 보험료를 납입하고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작은 보험료를 내고도 거액의 보험금을 취득하는 사람도 있다. 이 점을 이용하여 고의로 보험사고를 초래하고, 불법적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보험사기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최근 보험사기가 점점 악질적이고 교묘해지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이론이 고안되고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기술을 접목하여 전국 의료기관의 진료시간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휴진일 허위 수술이 의심되는 사례를 탐지·조사하거나, 보험사기 신고제도를 활성화하고, 보험회사는 보험사기특별조사부서를 두어 미심쩍은 보험금청구 사건을 점검하고 있다.
예전부터 보험전문가는 보험사기를 우려했다. 1781년 영국의 웨스켓은 “모든 보험문제에서 지켜져야 하는 가장 크고 본질적인 점은 사기이다”라고 말했고, 스톡홀름과 함부르크의 법령과 같이 사기범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요구했다. 나아가 그가 경험한 보험사기의 유형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부정확하게 기재된 적하 △행방불명인 선박에 대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영국국적의 선박이나 선원중 영국인의 비율이 3/4 이상인 선박을 통해서만 운송하도록 하는 것 등을 규정한 항해법을 위반하여 선적된 적하 △적국의 외국인을 보험계약자로 한 보험 △이로·목적항의 변경 △항해허가구역을 벗어난 항해 △이전 항해에서 발생한 훼손을 수선하지 않고 누수인 선박으로의 항해 등이 그것이다.
보험자를 기망하기 위한 선박의 화재 또는 파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이 오래전부터 행해졌다. 보험금취득을 위한 선박의 파괴를 처벌하기 위한 법은 1702년에 이미 제정되었다. 1725년법에는 선주, 선장, 고급선원·선원에 의한 선박의 파괴에 사형을 규정하였다. 1782년법은 선박이외에도 섬유, 비단, 아마, 목화 등으로 범위가 넓혀졌다. 1802년의 알(R) 대 이스터비사건에서는 보험금편취를 목적으로 어드벤쳐호의 선박에 구명을 내 침몰시킨 선장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해졌지만, 선주는 종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1826년법은 종범에 대해서도 처벌하게 되었다. 1837년 중앙범죄법은 선박에 방화하거나 이를 교사하는 사람을 중앙범죄법원에서 심리하도록 하였고, 건물에의 방화, 선박에서 살인을 목적으로 선박의 방화, 선주, 보험자, 적하소유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선박의 방화, 구조방해, 난파선파괴 등을 범죄행위로 규정하였고, 1861년의 고의훼손법으로 통합되었다.
1779년부터 200년 동안 수정없이 전세계 해상보험실무에서 사용된 로이즈 SG보험증권에는 보험사기에 대한 조항은 없었고, 보험계약자의 보험사기에 관한 판례는 없지만, 선장이나 선원의 악행에 대한 사례는 많으며 이는 담보위험이다. 반면 화재보험약관에는 사기적 보험금청구를 무효로 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1866년의 브리튼 대 로얄 인수어런스컴퍼니 사건에서 윌레스 판사는 보통법상의 사기적 보험금청구의 결과에 대해서 ‘보통법상 사기적 보험금청구를 한 사람은 보험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보험계약은 양 당사자에 대하여 완전한 선의계약이고 이 선의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사기적 보험금청구의 경우 무효’라는 조항이 화재보험약관에 삽입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다. 윌레스 판사는 ‘허위와 사기가 존재하면 피보험자는 보험계약상 여하한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사기적 보험금청구는 무효이다’는 문언과 ‘모든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2015년 영국보험법이 제정될 때까지 약 150년 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나라도 손해보험에서 “보험계약자가 손해 통지 또는 보험금 청구에 관한 서류에 고의로 사실과 다른 것을 기재하였거나 그 서류 또는 증거를 위조 또는 변조한 경우, 그 해당 손해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을 잃게 됩니다”는 청구권상실조항이 들어 있다. 그러나 2010년 손해보험표준약관에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청구서류에 고의로 사실과 다른 것을 기재하였거나 그 서류 등을 위조 또는 변조한 경우 1월 이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이미 보험금지급사유가 발생한 경우 보험금지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중대사유로 인한 해지조항이 도입되기까지 여러 갈등이 발생했다. 사기적 보험금청구시 보험금전액을 지급할지, 일부를 지급할지 여부에 대해 많은 재판이 벌어진 것이다.
근래 연구기관의 보험사기 적발 결과에 따르면, 살인·자살·방화·고의충돌 등 고의사고를 유발하는 적극적 형태의 보험사기는 감소한 반면, 허위입원·보험사고 내용 조작 등의 허위·과다사고 유형과 자동차보험 피해 과장 등 연성사기와 관련된 유형의 보험사기가 증가하였다.
부산 기장군에서는 뇌종양을 앓던 여동생을 피보험자로, 자신을 자동차상해보험의 법정상속인으로 5억원 한도 보험에 가입한 후 바다에 차량을 추락시키고 자신만 탈출해 여동생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보험살인으로 의심되어 조사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도 남매의 아버지가 탄 차량이 강으로 추락, 사망하여 1억원 넘는 보험금을 남매가 탄 사실이 적발됐다.
2018년의 대전지방법원 선고판결에서는 피의자가 보험금편취를 목적으로 위장결혼하고 피해자사망시 1억5000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받는 내용의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일본 오사카여행 중 신경안정제 등을 주입하여 호흡부전 등으로 사망하여 보험금을 취득하고자 하였으나 사고경위에 의문을 품은 보험자의 지급 거부로 미수에 그쳤다. 특히 피의자는 3개월 전에도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피보험자로 지정하고, 사망시 1억5000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받는 내용의 여행보험에 가입한 후 오사카에서 니코틴 원액을 마시게 하여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다양한 유형의 보험사기는 이 뿐만이 아니다. 상해 또는 질병의 직접적인 결과로 입원하게 된 것에 대하여 지급되는 보험금인 입원보험금이 위장사고 또는 질병사칭에 의한 부정청구에 이용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사고의 발생 또는 질병의 발생은 사실이더라도 치료가 필요없는 입원을 의사의 용인 아래 장기간 계속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보험설계사 출신인 A씨 가족은 91개 보장성 보험에 가입한 뒤 사고나 질병을 꾸며내는 방식으로 9년에 걸쳐 11억 8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내 가족 7인 중 2인이 구속됐다. A씨는 보험설계사 경력을 통해 입원 일당과 수술비 등 고액의 보험금이 중복 지급되는 보험 상품과 보험금을 쉽게 지급받을 수 있는 상해나 질병의 종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실혼 관계인 B씨와 만나 미성년자인 자녀들의 명의로 매월 200만 원 상당의 보험료를 납부하면서 모두 91개의 보장성 보험에 집중 가입했다. 이들은 2017년 6월 등산을 하다 넘어졌다며 부산 해운대구의 한 병원에 골절, 요통 등의 이유로 21일간 입원해 보험금을 타냈다. 다음 달인 2017년 7월에도 같은 이유로 해운대구 한의원에 22일간 입원하며 보험금을 부당 편취했다. 이들은 입원이 비교적 쉬운 중소형 병원 37곳을 이용했으며, 사고 경위가 명확하지 않고 진단이 어려운 질병을 이유로 입원을 요구했다. 보험금이 지급되는 입원 일수만큼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다시 입원하는 방법으로 보험금을 타냈다.
정상적인 거래가 항상 비정상적·불법적 행위와 인접하여 있고,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와 이론이 불가결한 점은 다른 거래에서 볼 수 없는 보험거래의 특징이다. 보험사기는 보험계약을 악용하여 부정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행심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위험의 분산이라는 보험제도의 목적을 해치고,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의 희생을 초래하여 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우리 보험산업은 1년 수입보험료가 200조원으로 세계 7위 국가다. 2018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수는 생명보험회사 628만건, 손해보험회사 2793만건으로 총 3421만건이며, 전체 국민의 66%가 가입해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보험은 보험료측면에서나 가입자수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보험문화의 선진화를 해치는 보험사기의 근절은 앞으로도 보험업계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