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고라니] 나의 첫 직장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거리에 있었다. 3개월쯤 통근을 하다 야근으로 막차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며 회사 근처에 원룸을 구했다. 몸은 편해졌지만 다달이 나가는 월세가 너무 아까웠다.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저축했고, 2년 뒤 제법 조건이 괜찮은 원룸을 찾았다. 그런데 전세보증금이 약간 부족했다.
마침 첫 직장의 퇴사절차를 밟던 중이어서 잔금을 치르고 며칠만 기다리면 퇴직금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 며칠 동안 부족한 돈을 어떻게 충당할까 고민했다. 지금 같으면 바로 은행에 달려가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겠지만, 당시만 해도 신용대출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컸다. 돈이라는 건 아끼고 모으는 것만 정답이고, 빚을 내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보험 약관대출이었다. 약관대출은 보험 해약환급금 중 일정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내가 들고 있던 보험은 약관대출이 가능했다. 아까운 이자가 나가는 건 신용대출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동안 낸 보험료를 담보로 잠시 돈을 빌린다고 생각하니 심적 부담이 덜했다.
대출신청은 보험사 앱과 전화로 간단하게 진행됐고, 하루 만에 돈이 입금됐다. 그 돈으로 부족한 보증금을 채웠고, 퇴직금을 받자마자 상환했다. 보험이라는 건 내가 죽거나 다쳐야만 효과를 보는 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단기자금을 융통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해 신기했던 기억이다.
급전이 필요했던 그때 이후로는 약관대출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만약 다시 이용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신용이 안 좋아져 제1금융권에서는 대출이 안 나오거나, 보험을 해지하는 것보다는 약관대출이 낫다고 판단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 전까진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 자칫 상환을 못하면 보험 자체가 해약될 수도 있고, 보통은 이자가 신용대출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관대출은 경제가 안 좋아질수록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불황형 대출로도 불리며,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며 최근 신청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요즘은 약관대출을 투자에 활용하기도 한다는 얘길 들었다. SK바이오팜 같은 공모주가 흥행에 성공하며 청약 증거금을 조달하기 위해 마이너스통장과 약관대출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투자의 결과는 차치하고, 단기자금 조달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보험의 부가적인 기능을 필요에 맞게 잘 활용하지 않았나 싶다.
보험의 종류는 너무나 많고 그 부가 기능도 제각각이다. 오늘은 퇴근하고 서랍에 고이 모셔둔 보험증권을 꺼내 하나하나 정독해볼까 싶다. 약관대출처럼 뜻밖의 기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뭐든 잘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