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이루나] 보험 설계사나 주변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에 가입해둔 보험이 지금 보험보다 좋다고 한다. 새로 나온 보험상품들은 보장 범위도 줄고, 갱신형도 많으니 혜택이 줄어들기 전에 서둘러 가입하라고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되기 마련인데, 왜 보험은 예전 상품이 좋다고 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보험과 관련된 슬픈 숫자가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15년째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매일 38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냥 행복한 것처럼 웃음 짓던 스타 연예인들의 자살 기사도 빈번히 뉴스에 오르내린다. 보기만 해도 가슴 먹먹한 통계 숫자에 필연적으로 돈과 보험 얘기가 따라붙는다. 보험은 슬픔과 두려움의 시간을 기회와 비용으로 환산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2001년~2010년 사이 생명 보험사들이 판매한 재해 특약 상품은 계약 후 2년이 지난 자살자에게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이 있었다. 재해 특약에 일반 생명보험 상품과 같은 지급 문구가 들어간 것은 '실수'였다. 보험금 지급 여부를 들고 유족들과 보험사들의 긴 소송이 이어졌고, 2016년 대법원에서 모든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필자가 2005년에 가입한 종신보험의 재해 사망 특약에도 해당하는 판례다. 보험금이 더 나온다면 응당 기뻐해야 하지만, 따져보니 입맛이 쓰다. 재해 특약의 경우, 일반 사망 시보다 2~3배가량 보험금이 늘어난다. 극단적으로 내가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앞두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남겨질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난 또 다른 고민을 할지도 모른다. 자살이 재해가 된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예전 보험이 좋다는 이야기는 소비자와 보험사 간의 끊임없는 줄다리기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예측하기 힘들고 복잡한 미래의 변화를 몇 줄의 문장과 숫자로 담다 보니, 해석이 달라지고 분쟁이 생긴다. 이를 다듬고 수정하다 보면, 보장의 폭은 줄어들고, 혜택은 축소된다. 특히 손실이 큰 보장 영역은 갱신형으로 변경되거나, 아예 지급 대상에서 빠지기도 한다. 카드사에서 혜택이 크고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혜자카드'는 서둘러 단종하는 것처럼, 보험사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기에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보험은 앞으로도 구관이 명관 행세를 할 수 있을까? 암을 예방할 수 있다면 암 특약은 유명무실해질 것이고,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되면 교통사고로 인한 재해 보장 사례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좋은 보험과 나쁜 보험을 나누는 명확한 잣대는 없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혜택의 크고 적음이 와 닿을 뿐이다. 보험 상품을 설계한 사람도 미래를 내다보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니다. 통계와 수치를 가지고 미래의 위험과 수익률을 계산한 것일 뿐, 세상은 계산식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15년 전 가입한 종신보험 상품을 살펴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기본 사망 보장 이외에 재해 사망, 재해 상해, 의료비 보장, 암 치료, 질병 특약 등이 한가득 담겨 있다. 가입을 권유한 부모님의 걱정이 느껴지는 구성이다. 15년 전 철부지 20대는 이제 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되었다. 보험 증서에 적힌 여러 문구와 숫자들은 앞으로의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도움을 주게 될까. 과연 내 보험은 명관이 될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