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다면]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면역질환이 있어 오래 치료를 받았다. 최근에는 우울증이 의심되어 병원에 가봐야겠다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다고 취직을 못 하면 어떡하지?’, ‘보험도 없는데 나중에 보험 가입마저 안되면 인생 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우울증을 검색하면 ‘우울증 취업’, ‘우울증 보험’과 같은 키워드가 함께 나왔다. 실제로 불이익이 두려워 건강 보험 적용을 거부해 많은 비용을 내고 있다는 글들도 보였다. 부정적 사고를 반복하는 게 우울증 증상 중 하나라지만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면 뭔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확실한 건 우울증 또한 상병코드가 존재하는 병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상담비와 조제비를 합쳐서 2~3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됐다. 문제는 사보험이다. 주변에서는 이유 없이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것은 위법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가입이 거절된 경우에는 가입이 거절됐다는 사실을 보험사로부터 확인받아 공식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고, 감독기관에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잠 자고 밥 먹는 일상도 힘든 우울증 환자가, 보험사의 답변을 받고,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이유 없는 가입 거절’이 무엇인지 알 방도도 없었다.
2020년 9월 21일 저녁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보험 가입은 어떻게 하는 걸까. 무턱대고 보험사에 전화를 해보자니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험다모아’라는 페이지가 있었다. 물론 모든 보험 정보가 제공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단비와 같았다. 이곳에서 실손보험을 검색해 온라인 가입을 신청했다.
이때 과거 병력을 보험회사에 알려줘야 하는데 이를 ‘고지의무’라고 했다.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꿀팁으로는 ‘본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보험사에서 알 방법이 없다’며, 정신과 진료 기록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고지의무는 말 그대로 ‘의무’이기 때문에 추후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정신질환을 숨겼다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사례들도 있었다.
나는 의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정신과 문턱을 넘지 못해 고통을 혼자 감당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가입은 잠시 미뤘다. 보험가입 창을 닫고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안내에 따르면 최근 1년간의 기록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조회가 가능했다.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한 뒤 최근 기록을 검색해보니 14개월 전을 기준으로 하여 1년간의 기록이 조회됐다. 최근 2개월간 진료내역은 자료 구축 기간이 필요해 조회가 불가능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진료받은 병‧의원에 문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5년의 기록이었다. 나름 영수증과 진료기록지를 잘 보관했지만 5년 치의 기록은 누락 없이 보관하기에 너무 많았다. 어느 병원을 다녔는지 다 기억할 수도 없으니 병‧의원에 직접 묻는 것도 무리였다. 결국 지사에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지사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혹시 온라인으로도 처리가 가능한 걸까.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유선상으로 문의해보기로 했다.
2020년 9월 22일
오전 11시경 대표 번화로 전화를 했다. 대기 50번째라고 했고 예상 연결 시간은 4분이었다. 통화 요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안내와 지사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 사이에도 대기 시간이 초과해 주기적으로 1번을 눌러 연결을 연장해주어야 했다. 연장 여부를 묻는 물음에 1번을 누르기를 네 차례 반복하자 다섯 번째에 연결됐다. 상담원은 보험 공단 적용을 받은 기록만 조회 가능하며, 5년 기록을 조회하려면 지사를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온라인으로 조회할 방법이 없냐 물어봤더니 지사 방문 외에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2020년 9월 23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중구지사에 방문했다. 입구에서 체온을 체크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가 보험기록을 조회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드렸다. 담당자가 따로 있다고 오후 1시에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재차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한 뒤 담당자에게 관련 서류를 받았다. 내용을 작성하고 잠시 앉아있으니 기록지를 가져다줬다. 서류를 작성하고 자료를 받는 데까지 10분~15분 정도 소요됐다. 자료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고 해당 자료를 보험회사나 금융기관에 제출하여 생기는 불이익은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확인서도 작성했다.
보험사에 나의 병력을 고지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해서 보험공단의 기록을 그대로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경우 민감정보가 오‧남용되거나 보험금 지급 제한 등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는 서명을 마치고 나서 기록지를 받았다. 나의 건강하지 못함을 증명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았지만 조금 번거로웠다. 두툼한 5년간의 진료 기록은 ‘저는 이만큼 아픈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픈 사람도 민간보험 가입이 가능한지 알아볼 준비는 이렇게 끝났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안 될까? #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