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얼마 전 시상식을 다녀왔다. 암 극복 글쓰기 공모전에 당선돼서다. 작년 이맘때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었다. 힘들기만 했던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 같아 기뻤다.
시상식은 잠깐이었고, 암 전문의와 패널이 함께하는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뮤지컬배우, 사회적기업 대표, 유튜버 등 다양한 직업의 패널이 참여했다. 그들은 갑상선암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암과 싸우며 지지 않고 있었다.
그 중 유난히 마음에 남는 말이 있었다. 환자가 몸으로 싸운다면 가족은 마음으로 암과 싸운다는 이야기였다. 암환자 가족들은 더 빨리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병이 깊어질수록 분노와 슬픔, 무력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같이 행사에 참여한 아내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몸만 신경 쓰느라 몰랐지만, 아내 역시 자기만의 괴로운 시간을 견뎌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다”라는 말이었지만, 난 매일같이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남편이 암환자라는 사실이 체감되지 않게 병원도 혼자 다니고, 회사도 3주 만에 금방 복직했다.
아내를 위한다고 한 행동이었지만 내 안에는 서운함이 쌓였다. 힘든 시간을 혼자 견디는 기분 때문이었다. 결국엔 아무리 착해도 암은 암인데 어쩜 그리 무심할 수 있냐며 원망을 토로하고 말았다.
그제야 아내는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뜻밖의 고백을 했다. 내가 암에 걸린 게 자기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신혼 초 부부싸움 때문에 병이 생긴 건 아닐까, 무리해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걸 말리지 않아 병이 커진 건 아닐까 매일 괴로웠다고 했다.
그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아내가 찾은 방법은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내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면 괴로움이 덜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 노력했지만, 그 때문에 외롭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결혼 후 처음 겪은 큰 위기였기에 나도 아내도 미숙했던 것 같다. 의연한 척하는 대신에 무섭다고 솔직히 고백했다면 아내는 기꺼이 내 손을 잡아주었을 거다. 아내가 죄책감이 든다는 걸 진작 말했다면 엉뚱한 생각하지 말라고, 오히려 행복한 결혼생활 덕에 암세포가 그 이상 자랄 생각을 못 했을 거라고 말해줬을 거다.
가족은 보험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괴로움을 대신 져 주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공유할 수 있게 각자의 공간 중 일부를 서로에게 쓱 내민 채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 각자의 건강은 각자 필사적으로 챙기는 것으로. 그래야 또 이런 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덜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