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이슈는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다. 건강검진에서 뭐가 나왔는지 공유하다가 실비보험은 꼭 유지하자고 했더니 친구가 뜻밖의 이야길 한다. 자긴 얼마 전에 실비보험을 해지했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본인부담상한제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소득에 따라 의료비 지출 상한액을 정해놓는 제도다. 일 년 동안 지출한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상한액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돌려준다.
친구의 이야기는 쉽게 와닿지 않았다. 공단에서 일정 금액을 돌려준다 해도 실비보험이 커버해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본인부담상한액이 가파르게 올라 내가 부담해야 할 금액도 덩달아 커질 위험도 있다. 비급여 치료는 건강보험 적용이 어려우므로 여러모로 실비보험을 유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알고 보니 친구는 단순히 건강보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실비보험을 해지한 건 아니었다. 보험사에서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환급금을 제하고 실비를 지급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요리사인 친구는 코로나 기간 소득이 줄었는데 건강까지 안 좋아져 길게 입원한 적이 있다. 병원비를 내고 평소처럼 실비보험을 청구했는데 보험사에서 수백만 원을 제하고 돌려줬다는 것이다. 본인부담상한제가 적용돼 나중에 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해줄 것 아니냐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보험사마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환급금만큼 제하고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실비보험은 실제 손해액에 대해 지급하는 보험이므로 보험사와 건강보험공단에서 이중지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이유다. 심지어 그 내용이 약관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1세대 실비보험 가입자에게도 적용해 소송까지 간 사례도 있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에도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왔는데 그런 노력이 허사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게 친구의 말이었다. 차라리 매달 내는 보험료를 모아 더 시급한 곳에 사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 막대한 비급여 치료가 필요한 병에 걸릴 일은 없을 거라 막연하게 믿고, 아니 희망하고 말이다.
친구는 본인부담상한제 덕을 본 만큼 뜻하지 않게 실비보험에서 보장을 ‘덜받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뜻하지 않게 그만큼 보험사들의 이익은 늘어난다. 게다가 보험사는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환급금을 임의대로 정해 보험금에서 제하고 지급한다. 그만큼 의료비 공백이 생기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실비보험을 해지한 친구의 마음이 이해된다. 그의 바람처럼 앞으로 큰 병에 걸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