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 운동 매진하다 연구원 설립, 부정부패 근절 앞장
현대판 ‘신문고’, 직원 익명제보시스템 운영…조직문화 개선
[한국공제보험신문=박형재 기자] 어떤 조직이든 규모가 커지면 부정부패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다보면 성희롱, 갑질, 폭언 등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관리하지 못하는 기업은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사람이 있어 주목된다. 한국부패학회장,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청지기교육연구원을 설립해 반부패 연구와 강의, 익명제보시스템을 서비스하는 오필환 이사장을 만나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청지기교육연구원을 설립, 운영 중입니다. 연구원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청지기교육연구원은 2017년에 감사원 인가 사단법인으로 설립했습니다. 당시 제가 한국부패학회 회장을 6년간 했는데, 그러면서 반(反)부패 연구도 많이 하고 그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반부패 국민운동연합’이란 단체를 만들어 국민들을 상대로 반부패 인식 확산 시민운동도 했고요.
청지기윤리교육연구원은 이런 반부패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든 기관입니다. 학술 연구, 교육, 반부패 운동 등 반부패 인식 개선과 네트워크 확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청지기(steward)정신이 필요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교육사업입니다. 저희 연구원은 반부패 전문가들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반부패 교육을 요청하면 현장 강연을 진행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당 기관에서 발생할만한 반부패 상황 및 이에 대한 해법 등을 제시해 호평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활동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부패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 학회하고 같이 세미나도 하고, 논문 발표도 하면서 부정부패 관련 전문성을 쌓고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와 전문성이 없으면 반부패 활동이 시민운동 정도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세 번째는 컨설팅 업무도 진행합니다. 대학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요청이 오면 기관의 현황과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부정부패 방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줍니다. 예컨대 모 기관은 공공기관 평가에서 청렴도 점수가 낮게 나왔는데, 연구원 컨설팅을 받고 점수가 높아졌습니다. 모 대학교는 컨설팅을 통해 대학의 윤리성 향상 및 사회환원, 구조조정에 대한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헬프라인(Help-Line)’이 있습니다. 이는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와 문제점을 CEO, 감사 등 지정된 관리자에게 익명으로 전달하는 ‘공익제보시스템’입니다. 조직 내 비리는 사실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외부로 터져나가기 전에 바로잡는 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헬프라인’ 시스템이 흥미롭습니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던 ‘신문고제도’와 비슷한 건가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헬프라인은 익명 보장을 통해 공익신고를 활성화하는 내부 통제 시스템입니다. 직원이 휴대폰 또는 PC로 헬프라인 홈페이지에 방문해 해당 기업 페이지에 접속한 뒤 신고서를 작성‧제출하면, 이 내용을 CEO나 인사담당자 등 관리자가 살펴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제보자의 신원은 IP자동삭제, 방화벽 등 보안프로그램으로 차단돼 누구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조직 내부의 문제는 직원들이 가장 잘 압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자체 해결하고 관리하는 것이 좋지만, 직원이 갑자기 CEO를 찾아가 그런 문제를 털어놓기는 어렵습니다. 헬프라인을 이용하면 익명성의 그늘 밑에서 조직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는 제보 내용을 통해 내부 문제를 인식하고 조사해 사건을 해결하거나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주로 어떤 제보가 올라오나요?
성희롱, 성추행, 갑질, 폭언 등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헬프라인을 운영하는 저희 연구원에서도 제보자 신원 및 제보내용에 대한 정보는 원천 차단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헬프라인을 도입한 기업들이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 및 경영리스크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저희 서비스를 이용하는 울산교육청의 경우, 헬프라인 시스템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학원강사, 교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울산교육청 및 관내 학교 관련 이슈들을 수시로 제보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투명한 교육 행정이 가능해졌고, 학부모들도 안심하고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공제기관 중에는 군인공제회와 한국사회복지공제회가 저희 헬프라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제기관은 금융보험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금전 사고나 직원 일탈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익명제보시스템은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뛰어납니다.
실제로 부정부패 관련 공신력 있는 기관인 ACFE가 세계 96개국 기업과 정부기관에서 발생한 1388건의 부정부패사례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윤리행위 적발경로는 내부제보(43.3%), 내부감사(14.4%), 우연(7%), 기타(35.3%)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100대 기업의 75%가 헬프라인을 운영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구성원이 많아지다보면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헬프라인은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정보통제가 불가능하고, 조직 내부 이슈가 밖으로 터져나와 기업 평판을 위협하는 투명사회입니다. 이럴수록 헬프라인 같은 내부 통제 시스템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제는 윤리경영을 넘어 인권경영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있고, 기성세대 중에는 성희롱, 폭언, 갑질 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정부패를 바로잡고 올바른 것을 교육하며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희 연구원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부 문제를 손쉽게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서로 조심하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고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될만한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관리자 입장에서도 특정인물에 대한 제보가 많으면 그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기본적으론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 조직문화가 달라져야 하지만, 그 전까지 헬프라인이 도움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속가능경영이 화두입니다. 예전엔 기업이 돈 잘 벌고 일자리 창출하면 잘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사회공헌이나 ESG 등 사회구성원으로서 기여하고 있는지, 나쁜 사업 안하고 오랫동안 영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연구원의 반부패 관련 활동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까요?
부정부패 관련 연구와 논문들을 살펴보면, 요즘은 부정부패와 경제성장률의 상관관계를 수치화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실제로 주요 국가 중 청렴도가 높은 나라와 낮은 국가 사이에는 경제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며, 국가 청렴지수가 1만큼 올라가면 경제성장률 몇%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기업들도 정직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차이가 납니다. 기업 초창기엔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부정한 방식으로도 어느정도 성장할 수 있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문제가 돼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조직, 기업이 성장하는데는 몇십년이 걸리지만 그렇게 쌓아온 평판과 명성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에요. 부정부패가 그런 트리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연구원에서는 지속가능경영, 청렴도 확보라는 시대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반부패 운동, 헬프라인 서비스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윤리경영은 조직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