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며칠 전 10년째 좋아하는 인디밴드인 참솜의 소규모 공연에 다녀왔다. 공연의 테마는 ‘청춘의 밤’이다. 합정역 인근 70석 규모의 카페 겸 공연장에 하나둘 사람이 모인다. 평일 저녁 8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가득 찼다. 팬들과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고 청춘의 고민도 공유하며 20곡 가까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스마트폰에서 스트리밍으로 재생되는 건조한 음원이 아니라, 밴드 세션과 함께 풍성한 라이브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안겨준다.
1시간 반의 공연이 금세 끝났다. 앵콜곡도 금방이다. 인스타 홍보용 단체 사진을 찍고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 공연은 겨울쯤이라는 말에 다시 설렌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넘게 가수들은 제대로 공연을 열지 못했다. 축제도 사라졌다. 음원 수익이 크지 않고, 소규모 공연 중심의 인디밴드는 더욱 타격이 크다. 힘든 시기에도 계속 음원을 발매하고 활동하는 가수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젠 CD 플레이어를 구하기도 힘든 시대가 되었지만, 발매되는 CD를 꾸준히 산다. 턴테이블도 없지만, 한정판으로 출시된 LP도 서둘러 주문하고 사인도 받았다. 오랫동안 그들의 음악을 듣고 싶은 팬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다.
참솜 멤버 중 보컬 유지수님은 메일링 서비스도 하고 책도 내고 최근엔 블로그도 시작했다. 가끔 근황을 살펴본다. 음원에서 따스한 목소리와 달리 글에서는 청춘의 치열함과 피곤함이 배어 있다. 커피 바리스타로 취직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살인적인 일정도 올라온다. 코로나에 걸려 우울해하고, 일터에서 겪는 갈등과 퇴사로 인한 공허함도 전해온다. 청춘은 왜 이렇게 아파야만 할까? 예술을 하는 청춘은 왜 더 힘들어야 할까?
필자가 좋아했던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古 이진원)도 생전에 ‘도토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인디밴드의 어려운 생활고를 토로한 적이 있다. 2000년대는 MP3 불법 다운로드가 당연했고,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도 불합리하던 시절이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 고기반찬 먹게 해줘
도토리 싫어 라면도 싫어
다람쥐 반찬 싫어 고기반찬이 좋아”
학창 시절 대학로에 붙여진 달빛요정의 촌스러운 콘서트 포스터를 보고 한번 꼭 가 봐야지 하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대학생 청춘에게 콘서트 비용도, CD도 아깝게 느껴졌다.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받을 수 있는데 뭘 굳이. 하지만 그는 2010년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청춘의 아픔을 날 것의 가사로 대변해주던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다. 부고 소식을 듣고 죄책감이 들었다. 난 그의 청춘과 영혼을 양심 없이 도둑질한 것이다. 이후 그의 자서전도 사고 MP3도 유료로 다운받았지만 영영 달빛요정의 신보는 나오지 않는다.
오랜 기간 예술인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예술가에게 배부름은 사치라는 편견도 은밀히 남아있었다. 2022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한 한국 직업정보를 살펴보면 최저연봉 순위 50위에 예술인 관련 직업이 포진해 있다. 연극배우, 소설가, 연주가, 작곡가, 시나리오 작가들이 빼곡히 하위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고연봉은 의사, 조종사, 기업 임원들이다. 통계로 살펴봐도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연예인들은 아주 극소수 성공한 부류다. 대부분 예술인의 수입은 들쭉날쭉하고, 소득을 증명하기 어렵기에 보험, 공제, 대출 등의 금융 혜택을 받기도 쉽지 않다.
뒤늦게나마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2020년 12월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었다.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한 예술인에게는 모두 적용되며, 구직, 출산, 실업 급여 등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근로자 고용보험과는 적용 범위가 일부 차이가 있지만, 계약 금액이 월평균 50만원 이상이면 당연 가입되고, 근로자와 비슷한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예술인복지재단도 설립되어 예술인의 창작준비금, 보험료, 의료비, 사회보험료 지원을 하고 있고, 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률, 심리 상담, 계약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예술인을 위한 복지 지원은 이제 걸음마를 뗀 단계다. 예술인을 위한 공제조합의 설립은 아직 제대로 된 논의마저 부족하다. 업의 특성상 고정 수입이 없고,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가 많기에 예술인공제조합이 제도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창작환경의 개선과 지속성 있는 활동을 위해서 예술인들을 위한 보험과 공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관계 부처 및 대중의 관심도 절실하다. 대중들도 예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에게 공정한 몫이 돌아가는지 꾸준히 지켜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인디밴드의 음악과 그들의 목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싶다. 배고픈 예술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