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문맹과 21C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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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문맹과 21C 훈민정음
  • 이루나 sublunar@naver.com
  • 승인 2022.08.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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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보험라이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얼마 전 고향 부산에 들렀다. 지하철 5호선 공사로 인해 동네 삼거리가 몇 년째 어수선하다. 수십 년간 대로변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던 유명 지역은행 점포도 사라지고 직원 2명만 있는 출장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인근 건물 1층에 있던 대형 은행도 2층으로 옮겼다. 수많던 오프라인 금융 지점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점차 사라지거나 접근성이 낮아지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이 대폭 줄어든 대신 온라인 디지털 금융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여전히 오프라인 지점을 선호하신다. 카드를 쓰긴 하지만 예금 입출금, 송금, 적금 가입 등은 여전히 통장을 들고 현장에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신다. 온라인 특판으로 나온 금리가 높은 예금 상품은 오롯이 젊은이들의 몫이다. 그저 현장에서 직원이 추천해주는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대다수다. 게다가 종이통장도 아직 유료화가 되지 않았지만, 점차 발급을 줄여 나가고 있다. 

부모님은 스마트폰을 쓰지만 디지털 뱅킹은 활용하지 않으신다. 스마트폰에 은행 앱을 깔고 공동인증서를 발급하고 사용법을 메모하며 자세히 알려드렸지만, 잦은 업데이트로 자동 로그인이 풀리거나 UI가 변경되면 무용지물이었다. 서울과 부산에서 떨어져 살면서 원격으로 매번 사용법을 안내해 드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부모님은 여전히 은행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 손가락 몇 번이면 해결할 일을 1시간 가까이 걸려 해결하는 셈이다. 

“금융 문맹은 질병이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무섭다 - 앨런 그린스펀” 

미국 경제학자 앨런 그리스펀의 말처럼 금융 문맹은 질병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은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되는 단계이지만, 금융의 디지털화는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 모든 경제활동의 통로가 막히고, 자산을 축적할 수 없게 된다면, 살아남을 길이 없어진다. 편의점에서 현금과 카드를 받지 않고 디지털 화폐만 사용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자. 게다가 무인점포에 키오스크만 있어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손에 현금을 쥐고 있어도, 눈앞에 물이 가득하지만, 물을 마실 수가 없는 디지털 사막이다. 잔인하지만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고령층 뿐 아니라 장애인, 외국인 이주자, 탈북자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금융 소외 계층이 문맹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는 족쇄처럼 대를 이어 부의 불평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공제와 보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공제와 보험 상품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고, 설사 가입하더라도 이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체득하기 어렵다.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 경우를 대비해 보험금 기반 대출 제도가 운용되고 있지만, 이를 모르고 해지할 경우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모든 백성이 편히 글을 읽고 쓰게 하고자 하는 세종대왕의 덕으로 한국의 문맹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금융 문맹이 늘어나는 것은 세종도 어찌할 수가 없다. 금융 기관들이 청소년, 노년층을 위한 금융 교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규모와 지속성 측면에서 역부족이다. 이벤트성 CSR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 측면에서 국가, 지역, 사회, 기업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 국가 평생 교육 체계 내에 ‘금융 교육’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고, 디지털 금융 활용법을 전 연령층에 필수 스킬로 가르쳐야 한다. 돈 공부를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돈을 효과적으로 잘 쓰고 관리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말처럼, 우물이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면 목마른 사람도 말을 옮겨 타야 한다. 금융 소외 계층이 아날로그 우물 안에 갇혀 고통받지 않도록 많은 이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공제와 보험 업계도 금융 문맹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디지털 혁신의 속도와 방향을 잘 조절해야 한다. 말이 서로 사맛디 아니하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말이 서로 잘 통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세종처럼 먼 미래를 내다보고 디지털 금융 시대에 최적화된 21C형 훈민정음의 배포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금융을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것이 편한 날이 도래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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