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필자에게는 2003년 가입한 생명보험이 있다. 20대 초반에 가입했지만 55세까지 납부하기로 설계된 상품이기에 매달 통장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고 있다. 20년 동안, 보험료를 가져가는 기업의 이름이 2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부모님의 권유로 보험에 가입했을 때는 외국계 생명 보험사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구조 조정을 단행하더니, 결국 2013년엔 한국 내 보험사업을 사모펀드에 매각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브랜드명도 쓰지 못하게 되어 회사가 낯선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사모펀드의 목적은 명확하다. 투자자의 자본을 활용해 저평가된 기업을 매수해서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매각해서 차익을 얻는 것이다. 업에 대한 전문성과 장기적 시야 보다는, 단기간의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해당 기업을 정상화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존재 이유다. 결국 사모펀드는 2018년 국내 금융기업에 수조 원의 웃돈을 얹어 보험사를 매각했다. 그렇게 나의 보험은 또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보험사가 수차례 바뀌는 동안 내가 본 금전적인 피해는 없다. 새 기업이 인수해도 보장 내역도 동일하고, 갱신형 특약을 제외하면, 20년째 동일한 보험료를 내고 있다. 다만 나를 담당하던 설계사가 자주 바뀌고, 핸드폰의 앱도 재설치해야만 해야 했다. 하지만 보험회사가 파산하고, 아무도 인수하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90년대 말 일본에서는 중소형 생명 보험 회사 7곳이 파산한 적이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국내 기준으로 보험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보장받을 수 있다. 파산 전에 보험금 지급 사유가 생긴 경우는 전액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생명보험은 파산 시기를 따져서 골라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파산 이후 상품을 보유한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보험금을 보장해주나, 납입 금액 기준이 아니라 해지환급금 기준이다. 내가 낸 보험료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보험금 보장 기준도 5천만 원까지다. 누적 보험료가 많은 경우,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물론 생명보험사의 경우 매달 정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보험료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타 기업의 인수 의향이 높은 편이지만,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한결같이 돈을 지켜줄 것 같던 은행도 금융위기에 쉽사리 파산하고, 국가도 위급 상황에선 채무 불이행,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곤 한다.
고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보험 가입 시에 망하지 않을 유망 기업을 택하는 것뿐이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는데, 정작 가입할 보험사의 미래를 가늠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가장 좋은 길은 보험사에 대한 공적인 감시와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보험사도 사기업이기에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나 방만한 경영으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사전에 막아야 한다. 특히 보험업은 긴 시간에 걸쳐 상품을 운용하기에, 공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의 역할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기업의 합리적인 이윤 추구와 사회의 공적인 가치가 잘 조화되어야 보험업의 미래도 밝을 것이다.
땀 흘려 번 내 돈은 소중하다. 미래를 위해 20년 넘게 차곡차곡 모아온 돈은 더욱 각별하다. 부디 이번에 필자의 보험을 맡은 회사는 망하지 않고 오래 함께했으면 한다. 나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누군가에게 손쉽게 팔려 간다는 건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보험사와 나는 몇 줄의 계약문구와 몇 번의 사인으로 이어진 비즈니스 관계이지만, 오랜 기간 쌓은 심리적 유대감은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가치다. 부디 보험회사가 고객을 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인생을 설계해 주는 라이프 파트너로서 제 몫을 해주었으면 한다. 내 인생도, 내 보험도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