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과 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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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과 공제
  • 이루나 sublunar@naver.com
  • 승인 2021.07.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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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보험라이프]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이루나]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방송인 시절 맛깔나는 “You're fired(넌 해고야)” 멘트로 인기를 얻었지만, 트럼프처럼 자산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은퇴란 단어는 녹록치 않다. 특히 젊은 나이에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장벽은 경제적 자립이다. 월급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자본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요즘 유튜브나 블로그에 퍼져 있는 파이어족 관련 콘텐츠들은 출근하지 않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소소한 자랑과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더불어 코인과 주식 광풍으로 막연한 이상향으로 여겨졌던 파이어족들이 주변에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사직서를 내면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강남 아파트를 몇 채를 샀다더라”는 풍문이 채팅창을 떠돈다. 잠시 부러움과 함께 업무 일정표와 보고서가 나뒹구는 내 책상을 보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언제쯤 난 자발적인 은퇴를 할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카드값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월급 명세서를 보며 한숨만 늘어간다.  

파이어족의 등장은 공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가. 공제회마다 다르지만, 장기 상품의 경우 일정 기간 이상의 가입 기간을 요구하거나 해지 시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교직원공제회는 퇴직생활급여의 가입 자격이 장기저축급여에 가입 후 10년이 넘은 회원만 가능하다. 행정공제회는 퇴직급여 중도 해지 시 가입 기간이 5~10년 이내는 이자의 50%, 20년 이상 가입 시 100%를 지급한다. 공제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원들의 자산을 관리하고 이익을 보장해야 하는데, 파이어족 같이 조기 퇴직자가 늘어나면 운영의 변동성이 커지니 달갑지 않은 노릇이다. 

게다가 파이어족들은 은퇴 직전 공제회의 혜택을 최대한 이용한다. 시중보다 저렴한 금리로 목돈을 대출하기도 하고, 군인공제회처럼 직접 아파트 분양 사업을 하는 경우, 특별 공급에 청약 신청을 하기도 한다. 공제회의 혜택을 최대한 실속 있게 활용하는 것은 회원들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케이크는 먹지 않고 맛난 체리만 빼먹는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양산되면 공제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신용카드 사에선 이런 체리피커가 늘어나 상품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재빠르게 서비스 혜택을 축소하거나 상품을 단종시킨다. 비슷한 연회비를 내는 대다수의 소비자는 이런 알짜 상품이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다. 젊은 파이어족이 점차 늘어난다면 공제회에서도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상품의 수익성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매달 월급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의 직장인에게 파이어족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빠른 은퇴는 모든 직장인의 로망이지만, 이를 모두가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되려 빠른 은퇴를 위해 위험하고 공격적인 자산운용을 시도하다 ‘벼락거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공제는 파이어족보다 무척 느리고 답답한 걸음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꾸준히 미래를 채워나가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제도다. 파이어족의 발 빠른 재테크 전략과 절약을 위한 노력에서도 배울 점이 많지만, 바쁜 일상을 어렵사리 마친 후 퇴근길의 치맥 한 잔에 행복한 사람들의 하루도 더없이 값지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동료들과 저녁 술자리가 더 어려워졌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술 한 잔과 안주 한 점에 애써 씹어 삼키던 일상마저 사라졌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오롯이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힘든 시기다. 공제라는 제도와 조직이 하루를 성실히 채워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옆을 지켜주는 그림자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토끼처럼 숨 가쁘게 달려가는 파이어족은 아니지만, 거북이처럼 느린 직장인의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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