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이루나] 작년 여름, 열심히 뛰어놀던 딸 아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발가락을 부여잡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아 진정시키고 살펴보니 새끼발가락이 살짝 부어 있었다. 늦은 밤이라, 다음 날 아침 토요일에 문을 여는 정형외과를 급히 찾았다. X-ray를 찍고 나니 발가락 골절 진단이 나왔다. 한 달간 깁스를 해야 했다. 다행히 부러진 발가락은 잘 아물었고, 지금은 건강히 지낸다.
몇 달 후 아내가 딸이 태어나기 전 가입했던 태아보험 얘기를 꺼냈다. 골절 진단 보험금 30만 원이 나오는데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생각지도 못한 보험금이 나온다니 다행이었다. 다만 보험금 지급에는 서류가 필요했다. 병원에 가서 골절 치료 진단서를 받아와야만 했다. 보험금 지급 기간은 사고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라서 여유가 있다지만, 마음 구석에 숙제를 남겨둔 것 같아 영 찝찝했다. 토요일에 급히 찾은 병원은 평소 생활 반경에 있지 않아, 시간을 내기도 애매했다.
얼마 후 아내가 굳이 병원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진단서 발급을 위해 들렀다고 한다. 힘들게 줄을 섰지만, 서류를 발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 허탕을 친 것이다. 결국 몇 주 후 다시 병원에 들러 진단서 발급에 성공했다고 한다. 2만원 넘는 서류 발급 비용은 덤이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힘들게 발급받은 진단서와 약제비 영수증 등을 모아 보험사에 청구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고전적인 우편, 팩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요즘엔 휴대폰 앱을 통해 사진을 찍어 청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고객이 관련 서류를 보험사에 전달하고, 보험사가 이를 하나하나 검토해서 지급하는 번거로운 과정은 변함이 없다. 소비자로서 강한 의문과 불만이 든다. 작년 코로나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벌어질 때, 약국에서 파는 공공 마스크를 DB로 관리하여, 중복 구매를 막았다. 1500원짜리 마스크 구매 이력도 관리가 가능한 시대에 왜 보험금 청구는 힘들게 서류를 보험사에 보내야 하는지 답답하다. 병원, 약국, 보험사 간 의료 데이터를 공유하고, 신뢰성만 검증하면 아주 손쉽게 해결될 일이다.
2018년 보건복지부 설문 조사에 따르면 실손 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미청구 비율은 47.5%에 달했다. 매달 열심히 보험료를 지불하고도, 번거로운 보험금 청구 과정으로 인해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손실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의 불만은 10여 년간 쌓여왔고, 보험업계에서도 서류를 수작업으로 확인하고 검증하는 데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 낭비가 크다고 한다. 입법기관에서도 실손 보험 청구과정을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데이터를 제공해야 할 의료계에서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여, 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강하게 반대 중이다. 따져보면 정보 보안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고, 속내는 따로 있었다. 의료 DB가 공유되고 차츰 누적되면, 비급여 진료비 등의 가격 체계가 드러나고, 의료비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다수 국민의 권익보다 의료계의 이익이 더 우선시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뉴스에선 아파트 관리가 힘들어진다고 진입로를 막고 어린 초등학생들이 먼 도로를 돌아 통학한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보험금 청구 간소화 논의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타협점을 찾아 불필요한 비용과 낭비를 줄이고, 이를 보다 생산적이고 소중한 일에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래의 우리의 자녀들이 종이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을 찾고, 서류를 보험사에 보내며 동분서주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