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다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말로만 자율인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는 하기 싫고, 가만히 있자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제법 많았다. 매일매일 종이신문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 시작했다. 경제면의 주식 차트도 꼼꼼히 읽었다. 친구들과 다음 날 오를 주식, 떨어질 주식을 장난스레 맞춰보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가 지나니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이는 듯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어머니께 백만원을 빌려 기대와 자신감으로 한 종목에 올인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몇 달 만에 그 주식은 30%가 넘게 올랐다. 문제는 내가 학생이라는 거였다. 학교가 쉬는 날 매수는 했지만 매도를 할 방법이 없었다. 주식을 하겠다고 결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결국 손해를 봤고 성인이 된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머니께 원금을 갚았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머니께서는 치기 어린 내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돈을 빌려주셨을 거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해보라고. 그렇게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작년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주식시장에 서킷브레이크가 발동되고, 코스피가 1400대까지 하락하는 걸 보면서 그 결심은 더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1년 사이에 코스피가 3000대에 진입하는 걸 보니 불안감이 슬슬 몰려오는 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출퇴근으로 일상을 채워나가던 지인들에게서도 ‘영차영차’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며 이제 좀 ‘든든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이라고 여겼던,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마치 큰 병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병에 걸리면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치료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하고, 식습관이나 생활 패턴을 바꿔야만 한다. 이전의 일상을 고집하다가는 모든 걸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현실적인 고민도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에 든다. 나의 삶에 큰 변화가 올 때,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질병 혹은 경제적인 위협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심리적인 버팀목이 된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세상에서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보장해 줄 무언가를 찾는다. 변화하는 일상과 공존하면서 말이다. 마스크는 필수재가 되었고, 경제 성장은 제자리에 머물거나 후퇴하고 있다. 취업자는 줄고 자영업자의 빚은 늘어만 가는데 주식 시장은 랠리를 이어간다. 노동으로 버는 돈은 돈이 돈을 벌어오는 구조를 따라갈 방법이 없다. 노동의 가치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노동의 가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는 경제·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에게 더 집요했고, 생존을 위해선 머무를 수 있는 집과 버틸 수 있는 자산이 필수적이었다.
출근을 하고 돈을 벌어 일상을 꾸려나가는 평범함이 무너졌고, 경제력을 상실하는 게 사망선고와 같은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에서 소외되었다는 생각이 불안에 이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빚을 내고, 적금을 깨서 주식 계좌를 만든다. 사라지거나 부정당할 수 있는 나의 노동가치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보다 자본에 투자하는 게 지금의 불안을 진압하는 데에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건 환급이 되지 않는 보장형 보험료와 같다. 투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내가 주식시장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주식이 무조건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위태롭기에 주식이라는 보험을 드는 거다. 불안하더라도 돈의 흐름을 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입증해야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와버렸다.
일의 가치가 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력 상실 = 무능력’으로 취급받고 어느 누구도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이라도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얼마 전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 두 배가 올라도, 반으로 떨어져도 큰 문제가 없을 액수. 딱 한 주. 주식이라는 배가 어디에 도착할지, 난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파도가 심하게 쳐 롤러코스터 타듯 한다. 하지만 나만 섬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다 같이 망할 수도 있는 보험이라니. 그거 참 이상하다 싶지만 이 시절보다 이상한 게 어디 있으랴. 10만원 안 되는 돈으로 위안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투자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