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개정 보험법상 보험자 질문과 고지의무

2024-08-28     한창희 국민대 교수

[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2015년 영국 보험법은 기업보험의 고지의무제도를 개편했다. 고지의무가 공정한 제공의무로 개칭됐고, 그 내용은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더라도, 계약자가 보험자에게 그 중요한 사항을 밝히기 위해 다시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경우’ 보험계약자의 제공은 공정하다는 것이다.

전자에 관해선 1723년 코스타 대 스칸드랫 사건에서 챈스러 판사가 ‘계약자는 선박의 위험에 관한 정보를 고지했어야 한다’고 했다. 공정한 제공의무의 주요원칙은 계약자가 위험의 제공을 정보 우위자라는 점에서 통제한다는 것이고, 이 의무는 당사자 사이에서 보다 공정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영국 보험법은 2016년 8월 12일부터 시행됐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 다수의 판결이 내려져 이에 관한 법리가 명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박과 적하보험은 외국 보험사에 보험 가입이 허용되는 종목이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우리 손해보험사와 해상보험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도 영국법 준거조항에 따라 2015년 영국 보험법이 적용된다. 
 
이 글은 공정한 제공의무와 관련해 보험자의 추가 질문과 고지의무위반의 주장 포기에 관한 영국 판례를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영국 보험법상 고지의무위반주장은 포기될 수 있고, 방식은 명시적 또는 묵시적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2016년 뮤튜얼 에너지 엘티디 대 스타 언더라이팅 에이전시 엘티디 사건에서 ‘보험자는 제공정보가 중요하게 오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위험에 관해 계약자를 부보한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 적절한 정보를 수령했음을 인정한다’고 한 사례, 2020년 유케이 에이컨 파이넌스 엘티디 대 마르켈 엘티디 사건에서 ‘비고의적 불고지조항: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의 경우 우리는 계약자가 그 부고지 부실고지가 선의이고 부정한 행위가 아니거나 사기 의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조건으로 취소할 권리를 포기한다’고 한 경우가 그 예다. 

후자의 경우 신중한 사람이 객관적으로 그 사항을 해석했다면 묵시적 포기일 수 있다. 사례로는 보험자가 계약자로부터 충분한 고지를 받지 않았고, 보험자가 제공하는 한도에서는 추가사항의 존재에 관해 질문해야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경우를 들 수 있다.
 
2015년 보험법 제정 이전 법원은 위 사례에서 포기를 인정하길 거부했다. 법원이 중시한 것은 1906년 영국 해상보험법상 중요한 사항을 조사할 의무는 보험자에게 있지 않고 계약자에게 중요한 사항을 고지할 의무가 있으며, 포기가 문제 되기 이전에 위험의 제공이 공정한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보험자가 다른 중요한 사항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포기일 수 없다고 했다.
 
추가 질문이 필요한 경우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조항이 2015년 보험법에 규정되는 계기가 된 것은 2004년의 와이즈 언더라이팅 에이전시 엘티디 대 그루포 나시오날 프로빈셜 에스에이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계약자는 멕시코 칸쿤 소재 사치품의 소매상이었고, 보험 목적인 적하에는 시계(clocks), 미화 40달러~미화 1만8000달러, 평균가격 미화 1500달러가 포함됐다. 원보험계약의 스페인어판 번역본에는 시계는 Relojes로 기재됐고, 이는 탁상시계 또는 손목시계를 의미했다. 

재보험계약의 영어판에서의 시계(clocks)는 두 가지를 통용하는 단어였다. 재보험계약은 스페인어판이 먼저 작성되고 영어판이 작성됐다. 이 계약에서 적하는 ‘창고에서 칸쿤의 창고’까지 부보했고, 칸쿤의 창고밖에 주차 중이던 컨테이너에서 다량의 물품이 도난당했다. 손해액은 미화 81만7797달러로 이 중 70만390달러는 롤렉스시계의 가액이었다. 항소법원에서 이같이 비싼 시계는 절도의 대상이 되기 쉬우므로 고지 대상인 중요한 사항이라고 봤고, 고지의 면제에 대해 주로 다퉈졌다. 
 
다수 의견은 평균가격이 1500달러, 가장 비싼 가격이 1만8000달러인 시계가 마이애미에서 칸쿤으로 운송되는 경우 통상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할 수 없고, 시계가 손목시계를 뜻하는지 여부를 보험자가 질문해야 하는 사항은 아니며, 고지의무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릭스 판사는 고지의무위반은 아니지만, 보험자의 질문이 필요했고 질문이 없었으므로 고지의무위반주장의 포기라고 했다. 또 보험자 질문예시로 ①이 고가의 시계가 마이애미에서 칸쿤으로 통상적인 선적으로 운송되는가 ②손목시계인데 번역 시 오류 아닌가 ③내가 이 시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가였다. 이는 칸쿤에서는 비정상적인 거래로 보인다는 것을 들었다.
 
추가 질문과 고지의무위반포기에 관한 2015년 보험법은 릭스 판사가 명확히 한 사항을 입법한 것이다. 2020년의 영 대 로얄 앤드 선 얼라이언스 인수어런스 사건에서 법원은 ‘여하한 이유로든, 특정한 보험자는 신중한 보험자가 알고자 할 모든 것을 아는 것을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보험자가 계약자와 이에 대해 소통한 경우, 보험자가 관심없다고 적시한 정보가 고지되지 않았어도 위험의 공정한 제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청약서는 보험자가 수령하고자 원하는 정보에 대한 통제권한을 보험자에게 전환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계약자에게 답변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질문은 보험자가 특정한 정보에 대해 알기를 포기하는 문구로 작성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3년 동안 몇 번 사고가 있었는지 질문하는 경우 그 이전의 사고에 대해 보험자는 알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2020년 위 사건에서 계약자의 보험중개사는 소프트웨어 약 20페이지 양식을 통해 계약자의 영업용 재산에 대해 청약을 했다. 도덕적 위험란의 질문사항 중 하나에 ‘계약자의 본인, 이사, 동업자가 파산하거나 그와 같은 절차를 받은 적이 없습니까?’라고 기재돼 있었다. 계약자는 모든 사항에 대해 없다고 표시했다. 

보험자는 2017년 3월 27일 이메일로 피보험자는 파산하거나 파산관재인이 된 적이 없다고 했다고 통지했다. 보험중개사는 이메일이 정확하다고 답변했다. 화재사고로 보험금이 청구되자 보험자는 이전 5년 동안 피보험자가 해산한 5개 회사의 이사였음을 적발했다. 법원은 이메일은 질문이 아니고 보험자가 정보제공이 충분했다고 고찰한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봤다. 
 
2015년 보험법이 적용된 2021년의 리스토란테 엘티디 티/에이 바 마시모 대 취리히 인수어런스 사건에서 원고는 글래스고우에서 바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건물의 리스 임차인이었고, 회사에는 3명의 주주와 이사가 있었다. ‘동의’, ‘동의 않음’으로 표시하도록 돼 있던 청약서에 ‘영업과 관련된 소유자, 이사, 동업자 또는 가족 구성원은 해산명령의 대상인 적이 없었다’라는 사항이 있었다. 

법원은 질문은 영업과 관련된 소유자, 이사, 동업자 또는 가족 구성원의 파산에 대해서였고, 계약자의 이사가 관련됐을지 모르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파산사고를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고 보았다. ‘영업과 관련된 소유자, 이사, 동업자 또는 가족구성원’이라는 문귀에서 보험자가 그 밖의 사람이 파산에 대해서는 알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우리 보험법상으로는 보험자가 고지의무위반사항을 안 경우 해지권 제한 사유로 하고 있다. 반면 영국 보험법은 보험자의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사항으로 ①보험자가 인식하는 사항 ②보험자가 인식해야 하는 사항 ③보험자가 인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항 ④보험자가 정보를 포기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06년 영국 해상보험법에 규정된 사항이지만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개정된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나아가 동법의 가장 중요한 개정사항은 추가 질문에 관한 것이다. 계약자가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보험계약자가 ‘신중한 보험자가 인식한다면, 그 중요한 사항을 밝히기 위하여 다시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보험자에게 제공한 경우’ 고지의무위반이 아니다. 이는 고지의무위반주장의 묵시적 포기와 관련한 것이다. 

이에 관해 최근 영국 판결은 보험계약 체결 시 보험자가 계약자에게 답변하도록 요구한 질문표는 보험자가 알고자 하는 사항만을 답변하면 충분한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우리 대법원이 해상보험사건을 처리하는데 영국의 해상보험법과 실무를 그대로 적용해 오고 있는 점에서 이에 관한 판례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