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보험의 팬덤
[2030 보험라이프]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필자는 팬(Fan)이다. 홍대 인디가수와 일본 시티팝 가수를 좋아한다. 음악은 유튜브와 스트리밍사이트로 듣지만, 그래도 CD는 꼭 사줘야 한다. 인스타그램으로 공연 공지가 뜨면 치열한 티켓팅을 뚫고 표를 구한다. 콘서트 현장에서만 파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굿즈도 당연히 산다. 공연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가수의 ‘퇴근길’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짧은 인사와 대화 시간이지만 행복하다. 맹목적이고 아낌없는 애정과 무한한 신뢰. 팬이라는 단어면 이해가 된다.
팬의 어원은 ‘신전’을 뜻하는 ‘fanum’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광신자를 뜻하는 ‘fanatic’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바람과 욕망을 뜻하는 ‘fancy’에서 유래하여, 특정 대상을 좋아하고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디서 시작되었든 무엇인가에 신들린 듯이 빠져서 열렬히 지지한다는 맥락은 비슷하다. 팬층의 열정적인 지지와 소비는 관련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팬들의 집단인 팬덤(fandom)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팬덤 경제, 팬덤 경영, 팬과 산업을 더한 팬코노미란 말까지 생겼다.
팬은 문화나 스포츠 산업에 국한된 용어는 아니다. 제조업처럼 얼핏 팬과 관련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팬덤을 이용한다. 애플의 팬덤층은 굳건하기로 유명하다. 아이폰을 쓰던 소비자가 맥북과 아이패드, 워치로 이어지는 생태계에 빠져들고, 열정적으로 지지한다. 삼성도 유명 브랜드와 연예인과의 콜라보 제품을 출시하여 관심을 끌거나, 팬클럽을 별도로 운영하며 ‘팬’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도 팬들의 종교적인 믿음을 풍자한 ‘테슬람’ (테슬라와 이슬람의 합성어)이란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팬덤이 굳건하다. 이러한 팬덤은 기업의 브랜드와 제품에 강한 신뢰를 보내고, 팬덤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팬덤을 보험과 공제 업계는 잘 활용하고 있는가? 팬덤의 경제적 가치는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팬덤을 구축한 회사는 없다. MZ세대 공략의 일환으로 팝업스토어를 열거나, 공연장 상해나 직거래 사기 피해를 보장하는 팬덤 안심 상해보험을 출시하는 단편적인 수준이다.
공제와 보험업계의 팬덤은 불가능할까? 보험과 공제 업계는 되려 팬덤을 만들기에 좋은 업종이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전 생애를 함께하는 업종이고, 자산 및 위험 관리에 대한 부모의 긍정적인 경험을 자녀에게 물려주기에도 좋다. 좋아하던 스타가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특정 제품에 하자가 생기면 팬덤은 급속히 흔들릴 수 있지만, 다양한 변수를 상시 고려하는 보험과 공제 업계는 비교적 리스크도 적다. 제대로 된 팬덤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지속성과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보험과 공제 업계가 팬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쓰는 발상으로는 제대로 된 ‘팬’을 만들긴 어렵다. 특정 사람과 기업의 팬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기업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 철학, 상품과 서비스에서 창출된 매력적인 가치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팬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팬이 공감할 수 있는 기업의 철학을 보여주고, 그 기업과 함께하면서 즐거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상품의 수익률과 외연의 확장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상품에 가입하고 유지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삶에서 어떤 효용가치를 갖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보험이나 공제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고객의 삶에 큰 자랑이 되고,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긍정적 경험이 축적되고, 그런 경험이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기업이 팬덤을 갖고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혁신적으로 업계를 선도해야 하며, 팬들의 변덕스러운 니즈를 끊임없이 반영해야 하고,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담보해야 한다. 반짝 스타나 시대에 뒤처진 올드한 스타를 좋아하는 팬은 거의 없다. 내 곁에서 함께 성장하고, 나와 함께 스토리를 쌓아가면서, 내 삶을 빛낼 기업만이 팬을 거느릴 수 있다.
공제와 보험업계도 스스로를 되돌아볼 때이다. 우리가 팬을 가질 만큼 매력적인 기업인가? 열성적인 팬을 위해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노력할 자신이 있는가? 공제와 보험업계에도 열성적인 팬덤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우리나라의 공제 보험 업계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열성팬들이 홍대 거리를 자랑스럽게 질주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