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나라의 극한직업, 간병인
[2030 보험라이프]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우리는 급속히 늙어가고 있다. 22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2.7세에 이른다. 반면 출산율은 0.7명대로 세계 최저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노인인구는 늘어나는데 어린이와 청년인구는 점점 줄어든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고향인 부산도 매년 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높은 굴뚝이 랜드마크였던 동네 목욕탕, 마을 입구를 지키던 지역 은행, 추억이 깃든 상가들이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 빈 땅에 신축 빌딩이 세워지면 으레 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한때 400만에 육박했던 부산 인구는 24년 기준 328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노인인구는 점차 늘어가고 있다. 지역사회는 활기를 잃고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응당 아픈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을 간병할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간병인이나, 요양병원을 활용할 수 있다. 간병비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이마저도 어려운 가정은 간병의 부담을 가족들이 분담하곤 한다. 하지만 가족들도 경제 활동을 해야 하고, 환자의 거주지와 거리가 멀면 가족 부양도 쉽지 않다.
필자가 아는 기업교육 강사가 있다. 대기업 건설사를 다녔지만, 아픈 가족의 부양을 위해 희망퇴직 후 프리랜서 강사 시장으로 뛰어든 분이다. 밤낮으로 전국을 오가며 강의를 하다 어느 순간 강의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었다. 봉양 중이던 노모의 병환이 심해지자, 중증 장애를 감당할 간병인을 구하기가 어려워 본인이 24시간 간병을 한다. 경제 활동을 중단하고, 간병에만 매달려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간병제도는 매우 취약하다. 간병을 지원할 배우자나 자녀가 없다면 의료 사각지대에 빠지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간병보험을 생명, 손해 보험사에서 판매 중이다. 간병비 일당을 보조해 주거나, 보험사와 연계된 간병인을 지원해 주는 형태의 보험이다. 하지만 365일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장일이 제한되어 있고, 갱신형이 많아 보험료가 오를 수도 있다. 그리고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도 한정적이다. 월 보험료도 고가 보험은 10만원 수준으로 높아 가계에 부담이 된다. 간병보험이 좋은 상품일 수 있으나, 높은 간병 부담을 다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앞으로 노인은 늘어나고, 아픈 노인도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효도의 가치관은 종말에 다다랐다. 송길영 작가는 현재의 4~50대는 부모에게 효도했으나 자식의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번째 미정산 세대가 될 것이라 진단한다. 가족에게 오롯이 간병 부담을 맡길 시기는 이미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기존의 공제와 보험으로도 막기 힘든 쓰나미가 되어 다가오고 있다.
국가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간병 전문 인력도 시급히 육성해야 하고, 간병의 질도 높여야 한다. 내국인의 인건비가 높아 문제가 된다면, 외국인 간병사에 대한 제도적인 관리와 육성도 시급히 수면위로 올려야 한다. 또한 개인이 원하는 간병인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간병 매칭 플랫폼도 관리가 필요하다. 복불복 수준의 간병인 매칭이 아니라, 지역, 시간, 수준별로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젠 간병을 사적 의료 영역에서 공적 의료로 끌어올려야 한다. 분명 비용과 품이 드는 이야기다. 공적 보험비는 더 오르게 될 것이고,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간병 살인, 간병 파산이라는 단어가 우리네 일상용어가 될 것이다.
지금의 노인들도 한때는 젊은 청춘이었고, 현재의 청년들도 언젠간 늙어갈 것이다. 효도의 문제를 떠나 간병은 모두에게 필히 닥칠 일이다. 이를 개인과 가족의 부담으로 남겨 두어선 안 된다. 인구는 급속히 늙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가치와 역동적인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공제와 보험업계도 신상품 출시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간병 시스템의 개선과 보완을 위해 함께 뜻을 모으고, 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