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상호보험의 특징

2024-06-26     한창희 국민대 교수

[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해상보험은 시장보험과 선주상호보험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사고로 선박 또는 적하 등에 생긴 손해를 보상하고, 후자는 선주상호보험조합(조합)에 가입한 선박에서 조합원인 선주의 과실로 발생한 인적·물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과 비용 등을 보상한다. 

선주상호보험은 조합이 사원의 이익을 위해 영위하는 상호보험의 일종이다. 일반보험원칙과 다른 특징으로는 첫째, 보상 여부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조합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것, 둘째, 모든 다툼은 중재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 셋째, 보상은 선지급 원칙, 즉 선주가 먼저 지급한 후 조합이 보상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글은 보상 여부가 조합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선주상호보험의 특이점을 기술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세계 대부분의 선주가 국제조합 그룹에 속한 조합에 가입하고 있고, 가장 점유율이 높은 영국 선주상호보험의 실무와 판례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세계의 선주상호보험은 국제조합 그룹의 회원인 일본조합을 포함한 12개의 조합이 인수한다. 국제조합 그룹은 세계 선복량의 90%를 담당하고 있다. 2000년 설립된 한국조합의 시장 점유율은 연간보험료 기준 약 17%로 나머지 대부분은 국제조합 그룹이 맡고 있다.
 
조합은 비영리·상호부조의 원칙, 선주들의 공동대응이 해상보험에서 발현된 것이다. 선주상호보험은 해상항해의 결과 또는 이에 수반해 생기는 제3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반해상보험의 한 형태로 보장한다. 

일반 보험사의 경우 보험계약자의 지위와 주식회사 사원의 지위가 별개인 반면, 선주상호보험조합은 가입과 동시에 조합원이 되기에 조합 관계와 보험계약 관계가 병존한다. 시장보험과 달리 보험계약자인 조합원은 1회성이 아닌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최초보험료는 가입 시 산출되지만, 조합은 의무 이행에 필요한 경우 매년 추가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담보위험은 사망과 상해, 승객, 적하멸실·훼손, 선박과 고정·부유물 사이의 충돌, 구조료와 공동해손, 예인, 난파선, 선박으로 인한 오염, 밀항자 대처비용, 검역비용 등이며 각 조합의 규정에서 정한다. 자동차종합보험에서 인적·물적 손해배상책임은 대인배상책임보험·대물배상책임보험으로 보상하는 것과 유사하다. 

국제조합 그룹에 속한 조합의 경영은 이사회, 조합원위원회, 이사가 맡고, 이사는 일상적인 보험관리업무를 담당한다. 또 국제연락망을 두고 있다. 
 
최초의 조합이 설립된 것은 1834년으로 탄생 배경은 다음과 같다. 1701~1714년 스페인 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상대로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포르투갈과 연합해 승리했지만 많은 부채를 지게 됐다. 

수입을 위해 해상보험의 특허권을 부여했지만, 사기가 횡행했다. 1720년 버블법은 2개의 회사의 독점권을 유지했지만, 로이즈 등 개인보험사업자의 영업엔 제약이 없었다. 로이즈와의 경쟁으로 법인보험회사는 쇠퇴했고, 영국의 지방항구를 거점으로 하는 선주들은 로이즈가 자신들에게 보상 등에서 우호적이 아니란 점과 개인보험자의 파산을 우려했다. 이에 상호부조에 바탕을 둔 조합이 결성됐다. 
 
국제조합 그룹은 주소를 영국에 두고 있어, 영국의 금융감독법과 1906년 영국 해상보험법, 2015년 영국 보험법의 적용을 받는다. 1906년 해상보험법상 규정된 예외사항이 아닌 한 동법이 상호보험에 적용된다. 

보험약관에 해당하는 규정은 2015년 보험법 중 8조(고지의무위반에 대한 구제), 10조(워런티위반), 11조(실제위험과 무관한 조건), 13조(사기적 보험에 대한 구제수단), 13A조(보험금지급지체), 14조(신의성실)의 조항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국제 선주상보험조합 그룹의 규정상 보장내용이 일반보험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지급 원칙이다. 즉 규정은 ‘소유자가 동 규정에서 부담하는 책임, 비용을 지급한 금액에 대해 부보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조합의 상호부조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고, 나아가 선주가 선지급의무를 이행하는데 조합의 대여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사망과 상해에 대해선 예외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이 허용돼 있다.

둘째, 보상 여부에 대한 재량성 부여다. 보상 결정에 이사, 이사회, 조합원위원회, 이사의 재량권이 부여돼 있다. 일반보험의 경우 약관에서 정한 사고가 발생하면 피보험자에게 보상을 청구할 법적 권리가 부여되는 것과 다르다. 

이 재량적 성격은 (1)옴니버스 원칙, 즉 규정에 면책위험이나 부보위험이 아닌 경우에 조합원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재량으로 근거의 제시없이 보상할 수 있다는 것, (2)기타의 경우, 즉 면책위험의 경우에도 조합원위원회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재량으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데, 단 보험금 청구가 고찰되는 시점에서 출석조합원 75% 이상의 찬성이 요구된다. 

영국의 1979년 벤쿠버 조스호사건에서 약관은 ‘위원회가 유일한 재량으로 달리 결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운송계약에서 규정된 도착항구를 가입 선박에서 적하가 하역되는 항구로 적하를 계속 운송하는 비용에 대한 조합원의 책임을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조합원위원회는 재량권을 행사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고, 법원은 이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 면책이 유지됐다.
 
보상 결정에 강제성 대신 재량권이 부여된 점과 관련해 선주상호보험의 보험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영국에서 보험의 요소로는 다음 8가지가 있다. (1)금전적 대가에 의한 위험의 이전, (2)상호적 의무성, (3)사고의 불확실성, (4)사고는 보험자의 통제범위 밖일 것, (5)사고는 손해 또는 불이익이 수반할 것, (6)계약자는 보험자의 위험부담에 대한 대가로 보험료를 지급할 것, (7)보험자의 급부는 금전이나 현물일 것, (8)피보험자는 보험 목적에 대해 피보험이익이 요구되고, 이것이 결여되면 도박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험의 요소 중 보험금 지급에 재량권이 부여된 약정은 보험이 아니고, 강제성 있는 권리나 재량인가의 구별은 약관해석의 문제다. 이에 관한 영국의 두 가지 판례를 소개한다. 

첫째는 1974년 판례다. 약관에선 매년 연회비를 납부하고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조합이 운전사와 차량을 제공하기로 하되, 조합원의 보험금 청구는 위원회가 각 사유를 고찰해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고 돼 있었다. 이것이 보험에 해당하는지가 다퉈졌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급부는 재량적인 것이 아니라 판시했고, 보험금 지급 의무의 강제성이라는 요소를 언급했다.
 
두 번째 판결은 메디컬 디펜스 유니온 대 공정거래청 사건이다. 조합 계약에 원고는 의료계 종사자와 치과의사인 조합원에게 소송 수행과 관련된 보호를 제공하는 내용이 있었다. 약정에서 조합은 기금으로 소송절차에 관해 급부를 제공할 수 있고, 이는 위원회 또는 수권받은 위원회의 절대적인 재량으로 보상을 제한하거나 보상한다고 규정했다. 

이것이 공정거래청 통제 아래에 있는 보험사에 해당하는가가 문제됐다. 법원은 할 수 있다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 것에 유념, 위원회가 판단하도록 청구할 권리만이 부여된 조합원에게 부여됐고, 계약자는 보험사고의 경우 확실한 지급을 받기 위해 체결하는 것이라며 보험회사성을 부정했다. 
 
이처럼 국제조합 그룹의 회원이 제공하는 보험은 시장보험과 그 형식, 관리의 측면에서 크게 다르다. 이는 조합의 상호부조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회원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목적은 안정적이고 유연한 관리 플랫폼의 설정이다. 옴니버스 원칙은 부보위험, 면책위험이 아닌 경우 조합원위원회의 재량으로 보상할 수 있고, 기타의 경우 면책위험이라도 조합원의 3/4의 찬성으로 보상할 수 있는 재량권이 부여돼 있다.
 
이와 같이 공정하게 결정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만이 부여된 경우를 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영국법원은 두 사건에서 선주상호보험의 보험성을 인정했다. 먼저 1979년의 벤쿠버 조스호사건에선 약관의 재량권 부여에 관한 조항을 분석한 후 선주상호보험의 보험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선지급원칙이 다퉈진 1990년의 파드르 아일랜드호사건에서도 상원은 보험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보험에 수리가 가미되는 등 금융공학의 발달, 금융혁신과 함께 인공지능에 기반한 제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 산정, 보험의 인수, 보험금 지급과정 등에 커다란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선주상호보험은 지난 60년간 선박으로 인한 벙커유류오염, 승객책임, 적하멸실·훼손, 연안영업활동으로 인한 잠재적인 해운업의 책임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보험의 재량성, 선지급 의무 등 일반보험과 다른 특징을 가지는 선주상호보험 실무의 향후 전개와 보험성 여부에 관한 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