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보험의 콜라보

2024-06-12     남상욱 서원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리스크관리학회장)

[한국공제보험신문=남상욱 교수] 여러 운동 중 유독 야구 감독만이 선수복을 입고 시합에 나선다. 축구나 농구, 배구 감독은 의례 정장 양복에 광낸 구두까지 신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과거 감독이 선수를 겸한 데서 비롯한다. 여차하면 경기에 참전해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아예 팀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것이 그 유래이다. 그래서 그런지 야구는 선수와 감독 간에 일체감이 보인다.

또 다른 경기와는 달리 감독들이 불펜에서 보내는 작전 지시 수신호도 눈요깃거리다. 포수가 가랑이 사이로 투수에게 보내는 손사인도 그렇다. 야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야구 사인을 더는 볼 수 없을 태세다. 감독이나 포수가 요란스레 손짓 몸짓 등을 하지 않고도 이제는 버튼 하나만 클릭하면 선수들 모자에 부착된 소형 스피커를 통해 감독 지시나 투수 공 배합 정보가 바로바로 음성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벌써 도입되었고, 우리 프로야구시리즈도 오는 7월부터 허용할 예정이란다.

비록 그간 문제가 되었던 상대 팀 사인 훔치기라든지 투수와 포수간 사인 교환에 따른 투구 지연을 막아 신속한 경기 진행을 위한 것이라지만 관중으로서 야구 경기 중 또 하나의 볼거리가 없어지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아쉽다.

여하튼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야구 사인마저 디지털화되어 단박에 전송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세상이 온통 디지털화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본다.

보험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만 해도 보험은 종이와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문구가 보험 교과서의 시작이었다. 먼 옛날 고리짝 시절 이야기가 아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그랬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지털화라는 거대 파고에 보험도 여지없이 휩쓸렸다. 종이 보험증권, 종이 보험약관이 전자문서로 바뀌었고, 보험영업서 옆에 즐비했던 그 많던 도장집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내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지금, 보험 가입부터 계약 체결까지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언제 어디서든 사이버상에서 한 번에 다 이뤄지고 있다. 거기다 젊은 20대는 물론이거니와 30, 40대까지 죄다 디지털 포로가 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은 엄청나게 충성도가 높은, 자발적 디지털 포로가 되어 버렸다.

디지털 포로들의 습성은 쉽고 편한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단박에 피해 버린다. 그 판단은 수초도 안 걸린다. 일일이 얼굴을 맞대고 상대하려 들지 않는다. 손 글씨를 쓸 기회도 별로 없는 터라 필기근육이 소실돼 대부분이 악필이다. 종이에 쓰여진 글씨를 읽는 데도 썩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화면에 띄워진 요약 동영상이 눈에 더 잘 익는다. 이미 대학 강의실은 교과서 대신 워드 파일, 공책 대신 태블릿, 연필 대신 전자 펜슬이 점령한 지 오래다.

반면 디지털 세대답게 계산이 빠르고 비교도 능하다. 손품팔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웬만해선 발품팔이는 안한다. 발로 뛰는 건 피곤하고 비효율적이라 생각한다. 대신 전문 커피체인점에 앉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만으로도 무아지경에 빠진다. 인터넷 접속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이런 이들에게는 디지털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 디지털 행동 세대에게 안성맞춤은 당연 디지털 맞춤이다.

대세는 디지털화다. 이를 부정할 수 없다. 이미 디지털화 세상이 가꾸어지고 있다. 보험이 이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 DX)이라는 조류에 편승해야 할 이유이다.

다만,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선보이는 지금, 보험업계는 보험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보험의 원재료인 리스크를 어떻게 잘 버무릴 것이며, 앞으로 계속 축적될 디지털 정보를 어찌 관리하고 보호할 것인지, 또 신 수익원 창출과 보험업의 지속가능성장 차원에서 어떻게 디지털 혁신을 이뤄낼 것인지를 풀어야 한다.

디지털과 보험의 콜라보는 만만치 않다. 결코 대강 볼 문제가 아니다. 이 숙제를 잘 풀어내야 시장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판세가 디지털화라고 해서 오롯이 디지털만 바라보는 것은 안 된다. 아무리 디지털화가 편하고 빠르고 또 좋다고 해도 최고의 응대는 디지털로 할 수 없다. 사람 온기가 실린 호응과 접객,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소통이 필요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감정까지 느끼는 인공지능(AI)이 개발되고 있다지만 기계는 기계다. 기계가 사람처럼 변장할 수는 있어도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차가움보다 포근한 정겨움을 찾는 것이 우리네 본성이기에 앞으로 디지털화가 더 진전되더라도 결코 디지털이 만능은 아니다. 사람이 우선이다.

더 더워지기 전에 현란한 야구 감독들의 손사인 보러 야구장에 한번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