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표류한 생협 공제, 이번엔 시작될까?

윤영덕 의원, ‘생협법 공제 개정안’ 대표 발의 공제 인가요건, 소비자보호, 관리감독 규제 강화 공정위 요구사항 대부분 수용, 스스로 족쇄 채워 5대 생협, “그만큼 절박, 이제는 공정위가 응답해야”

2023-04-20     박형재 기자

[한국공제보험신문=박형재 기자] 2010년 공제 근거법이 마련됐으나 주무부처의 미온적인 태도로 14년째 표류하고 있는 생협 공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우려하는 ‘소비자보호’ 규정을 대폭 강화한 ‘생협법 공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윤 의원과 5대 생협연합회는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공동 개최하고 “생협이 안정적으로 공제사업을 영위하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강화한 생협법 공제 개정안을 입법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희 아이쿱생협연합회 회장, 안인숙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 김영향 두레생협연합회 회장, 이영애 한국대학생협연합회 이사장, 곽현용 한살림생협연합회 전무 등을 비롯한 생협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생협연합회는 2010년 9월 생협법 개정으로 공제사업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관리감독 기관인 공정위에서 시행령‧시행규칙 등 세부 항목을 만들어주지 않아 지금까지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공제 근거법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경우들은 있지만, 주무부처의 거부로 중단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생협 측은 “공정위가 뚜렷한 이유 없이 법에서 허용한 공제사업을 방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정위는 “생협 공제는 타 공제조합과 달리 조합원 진입장벽이 낮아, 사실상 일반인을 상대로 사업하는 만큼 수협, 신협 등 금융권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는 사이 무려 14년이나 지났다. 2010년에 비해 2023년 현재 생협의 사업 규모는 5000억에서 1.26조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고, 소비자 조합원 가구는 47만 가구에서 144만 가구로 3배 이상 늘었다. 지역생협은 200여개로 확장됐다.

그러나 여전히 생협 공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생협 단체들은 그동안 정책토론회, 국회 포럼, 공정위-민간공제 TF 운영, 공정위와 5대 생협연합회 국장급 간담회 등을 진행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공정위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하며 소비자 보호조치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2022년 7개월간, 5개 생협연합회와 공정위, 금융위를 비롯한 전문가 등 협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생협 공제사업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다른 협동조합 법률과 형평성을 맞춰 인가요건, 자율 통제, 투명성 및 감독 등을 강화하고 조합원 보호조치를 보완한 것이 특징이다.

우선 ‘공제사업 인가요건’을 강화했다. 공제사업 인가시 진입요건을 신설해 연합회 등 회원 조합 10개 이상, 출자금 30억원 이상, 조합원 2만명 이상 조건을 충족해야 공제사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자율통제 강화’도 포함됐다. 공제사업 시작 시 상임감사 제도를 도입하고, 자산총액 2조 이상은 감사위원회 설치를 명시했다. 내부 통제기준을 마련하고, 준법감시인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아울러 ‘조합원 보호’를 위해 회원조합(대통령이 정한 수 이상)이 공제사업 관련 위반사항 검사 청구 시, 공정위는 해당연합회 검사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했다. ‘공제분쟁 조정’을 위해서는 공제자율분쟁해결기구를 설치‧운영하며, 여기서 해결되지 않으면 분쟁 조정기구 의뢰가 가능토록 했다.

이밖에 ‘투명성 강화’를 위해 공제사업과 다른 사업의 회계를 구분하고, ‘징계 및 처벌 규정’에는 생협연합회에서 공제사업 관련 규정 위반 시 최대 공제사업 인가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초강수를 뒀다.

사실상 공정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신협, 수협에 준하는 소비자 보호장치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스스로 제약을 거는 모습에서 이제 더 이상 생협 공제를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윤영덕 의원은 개정안 설명과 함께 “생협은 30여년 가까이 ‘생활밀착형 소비자 운동’의 기반을 넓히며 건강한 먹거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친환경농업을 확대해왔다”며 “그간의 실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공제사업을 만들어 우리 사회 새로운 안전망을 제시하는데 힘써주리라 생각한다. 생협의 공제사업은 더불어 사는 사회적 경제를 확산하고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희 아이쿱생협연합회 회장은 “정부에 지원금이나 지원체계를 요청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제금을 마련해 조합원간에 위험 상황에 상부상조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이미 14년 전에 국회가 생협이 공제사업을 할 수 있게 했는데, 행정부인 공정위가 사업을 못하게 막고 법에 정해진 사업에 대해 정관변경조차 불허하는 것은 행정권의 권한 남용, 입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또 “공정위는 금융위를 비롯한 법률, 금융, 공제, 보험전문가 자문을 거쳐 5대 생협연합회와 협의까지 완료한 법안을 마련해 놓고도 현재까지 7개월간 제도개선이나 사업 시행을 외면하고 있어 윤영덕 의원께서 입법 추진에 나서주신 것”이라며 “여야 의원과 공정위가 즉각 나서서 생협 공제사업을 시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영향 두레생협연합회 회장과 곽현용 한살림연합 전무이사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코로나를 겪고 고물가에, 치열한 유통 경쟁, 고령화와 돌봄 등 총체적 위기 앞에 생협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며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생협과 조합원들을 더 단단하게 연결할 안전장치로서의 생협 공제가 하루 빨리 시행될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