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보험사 일병 구하기’

LAT 잉여액 40%까지 RBC비율 인정 고금리 상황 속 평균공시이율 동결 유동성 평가 때 자산 인정 범위 확대 외국환포지션 한도 초과 한시적 허용 다각적 지원에도 채권 매도세 지속

2022-11-18     이재홍 기자
높은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보험업계에 대한 금융당국의 파격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치솟은 금리와 불안정한 채권시장 흐름 속에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준비해야 하는 보험사들의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이 방안들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금리 인상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 유동성 자산 인정 확대는 보험사들의 채권 매도를 막기 위한 목적이 크다보니 또 다른 형태의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LAT 잉여액 가용 자본 인정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LAT) 잉여액의 40%까지 지급여력(RBC)비율상 가용 자본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LAT는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에 대비, 결산시점의 할인율 등을 반영해 시가평가로 보험부채를 산출하고 이것이 원가평가보다 클 경우 해당 차액만큼을 추가 적립하도록 한 제도다.

보험사들은 현 시점의 금리와 손해율, 유지율 등을 토대로 반기마다 이를 산출한다. 이때 금리가 상승하면 자산(채권) 평가손실만 가용 자본 감소로 반영돼 RBC비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LAT 잉여액 40%를 가용 자본으로 인정하면서 금리상승으로 인한 보험부채의 실질 감소분도 자본이 증가한 것으로 인식, 보험사들의 RBC비율 하락을 일부 방지할 수 있게 됐다.

평균공시이율 동결

이달 초 금융감독원은 내년도 평균공시이율을 동결했다. 결과적으로 보험료를 인하하지 않아도 된 보험업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평균공시이율이란 각 보험사의 공시이율을 월별 보험료적립금 기준으로 가중평균한 것을 말한다. 금감원은 9월 말을 기준으로 최근 12개월을 반영해 10월 말에서 11월 초 산출, 공시한다.

도입 첫해인 2016년에는 3.5%가 적용됐다. 이후 2017년 3.0%,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2.5%, 지난해에는 2.25%로 계속 인하됐고 올해도 2.25%로 동결됐다.

보험사들이 금감원의 평균공시이율 공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다음해 사업계획과 예정이율 조정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때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만기 혹은 보험금 지급까지 보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소 예정 수익률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시중금리에 연동되는 경향이 짙다. 금리가 오르면 보험사의 자산운용 이익률 또한 개선되기에, 예정이율이 오르고 보험료는 낮아진다.

실제로 그간 평균공시이율이 하락세를 그렸던 데는 장기화된 초저금리 기조가 배경이었다. 기준금리는 2018년 11월 1.75%에서 2020년 5월 0.50%까지 떨어졌고 이 기간 보험사들의 자산운용 이익률도 동반 추락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금리가 급격하게 올랐는데도, 평균공시이율은 동결한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산운용 수익 증대를 도모하며 보험료 인하는 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유동성 자산 인정 확대

이달 들어 보험사의 유동성 평가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한 것도 있다. 기한은 올해 말 평가 종료까지로 회사별 유동성 평가 등급을 1등급씩 높이고 활성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채권 등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까지 유동성 자산으로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유동성 평가는 보험계약자에 대한 보험금과 제지급금 청구에 대한 보험사의 지급능력비율로 이뤄진다. 평균지급보험금(1년간 월평균 지급보험금의 3개월분)에 잔존만기 3개월 이하 유동성 자산 비중으로 산출되는데 100%를 기점으로 비율이 높을수록 양호하다는 의미다.

여기에 잔존만기가 3개월이 넘더라도 현금화 가능하다면 유동성 자산으로 분류, 평가에 유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예‧적금 금리상승 여파로 은행에 돈이 몰리며 저축성보험 해약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보험사의 유동성 자산 보유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면에는 규제 완화를 통해 짐을 던 보험사들의 채권 매도를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의 불안감은 최근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으로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의 큰 손인 보험사들이 유동성 자산을 확보하고자 채권을 매도하는 상황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외국환포지션 한도 초과 허용

금감원은 또 내년 상반기까지 보험사가 외국환포지션 한도를 넘기더라도 별도의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금리 급등으로 인한 대규모 채권평가손실 등의 사태를 감안한 것이다.

외국환포지션은 외화 자산과 부채간 차액을 말한다. 지난해 한 차례 관련 규정이 개정되면서 전분기 지급여력금액(가용 자본)의 30%(기존 20%)로 명시돼 있다.

보험사가 이 한도를 초과하면 금감원으로부터 주의를 받는다. 일정 기간 내 반복 초과하거나 고의 위반, 한도 위반일로부터 3영업일 이내 보고하지 않은 때는 한도 축소라는 직접적 제재가 내려진다.

보험사의 경우 운용자산 중 채권 비중이 높다. 보험부채 만기에 대비해 장기 국고채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자산평가액이 감소하는 영향이 크다.

자연히 외국환포지션의 한도 기준인 지급여력금액도 줄어든다. 이는 각 보험사의 가용 자본으로 산출되는데 이 중에 상당수를 차지하는 매도가능증권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같은 요인을 고려, 급격한 자기자본 감소 등 한도 초과 사유가 불가피한 경우(3영업일 내 위반 사실 보고, 1개월 내 원인‧조치‧관리계획 제출 등 조건) 내년 6월까지 재제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보험사들 불안감은 여전

금융당국의 여러 지원책에도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없다. 규제 완화는 일시적인 조처고 금리 인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IFRS17에 대비하려면 현금 확보가 중요한 상황 탓이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우량채권을 담보로 금융기관에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를 하는 것도 보험업법상 유동성 목적 차입에 해당하며 후순위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 중도상환을 위해 차입한 금액은 발행 한도에 산입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까지 내놨다.

사실상 흥국생명의 콜옵션 이행(자금조달)을 지원하려는 취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험사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우량채권을 매도하는 상황을 막고 대신 이를 담보로 새로운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8월 3조2123억원의 채권을 사들였던 보험사들은 지난달 2조2319억원을 매도했다. 이번달 매도세는 더욱 가파르다. 보험업계에서는 한시적 규제 완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이 장기적으로는 보험사에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인상 폭이 너무 급격하고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게 불안한 것”이라며 “RP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도록 한들, 투자자들이 국내 보험사 채권을 신뢰할지도 변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규제를 풀어준다는 것보다 ‘한시적’이라는 워딩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금리 위기는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