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수신료
[2030 보험라이프]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방제일] 언제부터인가 ‘구독, 좋아요’란 말이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사람들의 관심은 ‘돈’이 된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만 알던 공공연한 비밀이, 이제는 세 살배기도 아는 진리가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구걸하듯 구독을 권한다. 구독이라는 작은 규모의 관심과 씀씀이는 이제 하나의 시장의 형성했다. 이른바 산업이 된 것이다.
구독 산업은 사람들이 큰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쌈짓돈을 갉아먹으며 시장을 키웠다. 한 달에 고작 몇천원이었던 돈들은, 그렇게 구독의 바람을 타고 큰 규모로 성장했다.
구독경제는 일정 금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을 통칭하는 경제용어다. 이제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다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만 해도 매달 구독료로 십만원 가까운 돈을 지출한다. 비용 부담이 크지만, 삶의 편의를 위해 스스로 구독을 결정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니 괜찮다.
그런데 구독경제란 단어가 있기 전부터 구독경제를 실현한 기업이 대한민국에 있다. 바로 한국방송공사 KBS다.
때는 바야흐로 50년도 전인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는 당시 대한민국 각 가정을 기준으로 월 100원으로 구독료를 받기 시작했다. 1981년에는 월 2500원으로 가격을 인상해 각 가정에서 징수했다. 당시 각 가정의 가장들은 이 비용이 자신의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동의 없는 징수였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KBS는 한국전력공사에 수신료를 위탁했다. 따라서 KBS에 내는 수신료는 전기세에 합산해 비용이 나온다. 전기세 영수증을 꼼꼼히 보지 않으면 수신료가 나가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2000년 이전에는 이 수신료가 꽤나 유용했을 것이다. 당시 TV 채널이라고 해봤자 지상파 3사와 EBS를 비롯해 여타 케이블 채널이 몇 개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2021년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렇듯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는 월 2500원의 구독료(수신료)를 각 가정에서 징수해 운영된다. 월 500억원, 연 6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다. 이 뿐만 아니라 별도의 광고 수익 또한 얻는다. 이런 구조에도 KBS는 자꾸 수신료를 못 올려 안달이다.
최근 KBS 이사회는 수신료를 월 38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해 공분을 샀다. 사람들이 KBS에 분노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KBS 수신료 징수방식이 동의 없는 공제란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백골징포나 황구첨정처럼 그저 TV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각 가정은 TV수신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KBS와 달리 강제성을 띄지는 않지만, 공제회 역시 구독경제와 비슷한 사업 모델을 취하고 있다. 개인이 공제상품에 가입해 매달 일정액을 납부하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불안에 대비한다는 점이 유사해 보인다.
구독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일정액을 내면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믿음(구독경제), 일정액을 내면 미래 위험에 대비하거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공제)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이런 점에서 공제업계는 수신료 강제 징수와 방만경영 등으로 논란이 된 KBS를 반면교사 삼아 신뢰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사람들이 구독을 끊듯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